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Thoughts on Internet

11월 2012의 보관물

실리콘밸리에서 인도계가 약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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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 처음 온 이들은 인도인들의 강한 존재감에 놀라게 된다. 유명 테크기업에 방문해보면 최고경영진부터 핵심 엔지니어까지 인도계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비즈니스 담당 최고임원(니케시 아로라, CBO)부터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핵심 수석부사장들 다수가 인도계다. 워낙 인도계 엔지니어들이 많다 보니 애플이나 인텔 같은 회사의 구내식당에 가면 따로 인도 음식만을 내는 코너가 항상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실리콘밸리는 인도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민자 출신이 미국 기업의 상층부에 오르려다 부딪히는 장벽을 ‘글래스실링’(유리천장)이라고 하는데 인도계는 이런 벽도 뛰어넘은 듯싶다. 펩시콜라의 시이오인 인드라 누이처럼 인도계로서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진 자리에 오른 사례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의 왕성한 창업정신이다. 지난달 발표된 카우프먼재단의 조사결과를 보니 지난 6년간 미국에서 이민자가 창업한 테크기업 중 32%가 인도계에 의한 것으로 나왔다. 이는 2위 그룹인 중국계(8.1%)부터 8위 그룹인 한국계(2.2%)까지 7개 이민자그룹의 창업 숫자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이 인용과 위 그래프는 조금 다름. 위 그래프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만을 통계로 잡은 것인듯.) – 출처  Then and Now: America’s New Immigrant Entrepreneurs, Part VII

도대체 인도계는 어떻게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흔히 말하듯 우리보다 영어를 잘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높은 교육열 때문일까. 항상 개인적으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한 행사에서 그 실마리를 얻었다.

고교 테크클럽 학생들이 만들어 컬러프린터로 인쇄한 약간은 조잡한 팜플렛.

얼마 전 인도계가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공공도서관에서 테크심포지엄이 열렸다. 지역 고등학교의 테크클럽이 주최하는 학생 대상 행사인데 학교에 붙여진 포스터를 통해 이 행사를 알게된 중학생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 유튜브 등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간부와 CEO 등이 와서 강연하는 행사였다. 인도계 학생인 테크클럽 회장이 사회를 맡았는데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초중고생인 인도계 학생과 학부모였다.

유머가 넘치는 강연으로 아이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라힘 파잘.

유튜브의 인도계 중역이 온라인비디오의 발전 현황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근처 인도레스토랑의 협찬으로 인도 음식이 제공됐다. 그 뒤 20대 후반의 젊은 인도계 청년이 연사로 나섰다. 알고 보니 그는 고등학생 때 인터넷회사를 창업해서 150만달러에 팔았다는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수업을 받다가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 화장실에 가서 응대했다는 등 익살이 넘치는 그의 창업 이야기에 학생들은 완전히 매료됐다. 얼마 전 자신이 세번째로 창업한 회사를 오러클에 매각했다는 그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하라”는 말로 어린 학생들을 자극했다. 학생들은 열성적으로 질문을 했고 강연이 끝난 다음 그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같이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었다.

로봇기술 스타트업인 Willow Garage의 로봇 PR2를 연단에 올라가 만져보는 아이들. 오른쪽에 있는 학생이 쿠퍼티노의 몬타비스타고교 테크클럽 회장.

마지막으로 첨단로봇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사장이 나왔다.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의 강연과 로봇데모가 끝난 뒤 아이들은 줄을 서서 무대 위에 올라가 로봇을 만져보고 어떻게 하면 로봇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날 초청된 연사들은 대부분 인도계 학부모들의 친척이거나 친구들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연사들은 꽃다발을 안고 인도인가족-친지들에 둘러싸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인도계 학생들은 그들을 마치 삼촌이나 큰형뻘로 여기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나 창업자가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앞서서 성공한 이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성공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 거액의 펀드를 조성하거나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창업 생태계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한겨레신문 칼럼 기고글입니다.

참고로 인도계의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이유에 대해 비벡 와드화교수가 INC에 쓴 글이 있습니다. 일부를 발췌합니다.

  • The first few who cracked the glass ceiling had open discussions about the hurdles they had faced.
  • They agreed that the key to uplifting their community, and fostering more entrepreneurship in general, was to teach and mentor the next generation of entrepreneurs.
  • They formed networking organizations to teach others about starting businesses, and to bring people together. These organizations helped to mobilize the information, knowhow, skill, and capital needed to start technology companies. Even the newer associations had several hundred members each, and the more established associations had more than a thousand members.
  • The first generation of successful entrepreneurs—people like Sun Microsystems co-founder Vinod Khosla–served as visible, vocal, role models and mentors.  They also provided seed funding to members of their community.
  •  유리천장(the glass ceiling)을 뚫고 올라간 처음 몇몇이 그들이 처했던 어려움에 대해서 열린 토론을 갖는다.
  •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창업정신을 더욱 고양시키는 열쇠는 다음 세대의 창업자들을 가르치고 멘터링하는 것이라고 (위 성공한 첫 세대가) 결론짓는다.
  • 그들은 기업을 시작하는 것을 다른이들에게 가르치며 사람을 모으는 네트워킹단체를 만든다. 이런 단체들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정보, 노하우, 기술, 자본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생단체도 수백명의 멤버가 있으며 좀더 오래된 단체들은 수천명의 멤버를 가지고 있다.
  •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창업자인 비노드 코슬라 같은 성공한 1세대 창업자들이 선명하고 강력한 롤모델과 멘토역할을 한다. 그들은 또 커뮤니티멤버를 위해 초기투자까지 제공한다.

와드화교수는 인도계 단체들은 실리콘밸리에서의 교전수칙(Rules of engagement)를 배우고 마스터해서 그곳에서 가장 활발한 조직이 됐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들도 이런 인도계의 성공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Written by estima7

2012년 11월 26일 at 9:06 오전

스티븐 스놉스키와 스캇 포스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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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윈도우 8와 서피스타블렛 발표를 총지휘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븐 시놉스키(직급 President)가 갑자기 회사를 떠난다는 뉴스에 깜짝 놀랐다. 아니 윈도8과 서피스가 발표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아래 Verge의 기사를 읽어보고 얼마전 있었던 애플 스콧 포스톨의 해임과의 유사성에 또 한번 놀랐다.

The abrupt departure of Windows and Windows Live President Steven Sinofsky this evening has surprised many in the Microsoft community considering that he’s hot off the launch of Windows 8 and Surface, two of Redmond’s most important products in the last decade. There had been persistent rumblings that the man who oversaw the launch of Windows 8 was in line for a larger role in the company, perhaps even as the heir to CEO Steve Ballmer. However, multiple sources within Microsoft describe Sinofsky as abrasive and off-putting, aggressively maintaining his control over products and putting up roadblocks for products that would have any potential to diminish the Windows (and therefore his) power — an attitude rumored to be shared by Apple’s recently-deposed iOS chief Scott Forstall.

갑작스러운 윈도우스와 윈도우스 라이브 사장 스티븐 시놉스키의 해임은 마이크로소프트커뮤니티의 많은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동안 이 윈도우8의 발표를 총괄해온 인물에 대해서 그가 스티브 발머의 후계자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하지만 MS내의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시놉스키는 거칠고 불쾌하고 공격적으로 제품들에 관해서 자신이 통제하려고 들고, 자신의 영역인 윈도우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해가 되거나 도전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방해하고 나서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즉 애플의 iOS를 맡았던 스콧 포스톨과 비슷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스콧 포스톨과 스티븐 시놉스키의 비슷한 점.

-차기 CEO후보로 거론되는 천재.

-애플과 MS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제품(iOS, 윈도우스8)을 담당.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 팀플레이어가 아님.

-자신의 부서를 중심으로 사일로(Silo)를 형성.

불과 2주의 간격으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리더가 급작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리고 그 둘의 모습은 아주 비슷하다. 그 둘이 비운 자리는 다른 임원들이 나눠서 맡았다. 참 기가 막힌 우연.

Written by estima7

2012년 11월 12일 at 11:27 오후

전문가들의 해외뉴스요약, 테크니들과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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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현지의 한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언론의 미국관련뉴스는 아쉬운 점이 많다. 시차 때문에 느리게 전달되기도 하거니와 미국현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깊이 있게 전하기 보다는 너무 표피적으로 번역위주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핵심을 놓치고 지엽적인 부분만을 전달하거나 틀린 내용을 내보내는 일도 있다. 보통 언론사별로 워싱턴에 1~2명, 뉴욕에 1명정도 특파원을 내보내는데 사실 그 인력으로 미국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중요뉴스를 깊이있게 취재해 보도하는 것이 무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언론 국제뉴스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고 싶은 열망에 직접 특파원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매일처럼 미국의 따끈따끈한 뉴스를 취사선택, 요약해 한국인들을 위해 제공한다. 블로그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해외정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용한 테크니들(www.techneedle.com)과 뉴스페퍼민트(www.newspeppermint.com)을 소개한다.

테크니들과 윤필구이사

테크니들(트위터 @techneedle)은 실리콘밸리의 월든인터내셔널이란 벤처캐피털회사에서 근무하는 윤필구이사(@philkooyoon)가 시작한 사이트다. 올해 5월에 시작됐다. 그는 한국의 벤처창업자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의외로 실리콘밸리나 미국의 테크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나 시차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남보다 빠른 정보가  실리콘밸리에서는 큰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윤이사는 그래서 미국 테크업계의 중요뉴스를 요약해서 한글로 전달하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실리콘밸리쪽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뉴스를 매일 10개씩 선정해 그 요점을 한글로 간단하게 작성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뜻이 맞는 실리콘밸리의 테크업계종사자들인 이호찬씨(@kortechban) , 안우성씨(@woosungahn), 노범준씨(@ronbjro)를 섭외해 같이 분야를 나누어 매일 자투리시간을 이용해 뉴스를 정리한다.

주로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업데이트해 한국의 독자들이 아침 출근길에 미국 현지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윤이사는 “실리콘밸리의 소식을 어느 매체보다도 신속하고 간결하게 전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다.

뉴스페퍼민트와 이효석박사

올 7월부터 시작된 뉴스페퍼민트(트위터 @newspeppermint)는 동부의 하버드대에서 박사후과정에 있는 이효석씨(@hyoseok)가 주도해서 시작했다. 그도 “세상은 점점 좁아지는데 한국에 소개되는 외신뉴스의 양은 매우 적고, 그것도 잘못 전달되는 것이 많다”며 “그래서 중요한 외신뉴스를 모바일에서 읽기 쉽게 짧게 요약해서 전하는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박사도 뜻이 맞는 동료를 찾아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과정에 있는 유혜영씨(@hyeyoungyou)와 SBS 국제부기자출신인 남편 송인근씨가 뉴스페퍼민트에 같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분야를 살려 정치, 경제, 비즈니스, 과학분야의 읽을만한 기사를 매일 10개씩 골라내서 읽기 쉽게 요약해 제공한다. 주요테크뉴스를 전하는 테크니들과 달리 뉴스페퍼민트의 관심분야는 아주 넓다. 뉴욕타임즈같은 유력지의 기사외에 과학전문지인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의 “남녀간에 친구사이가 가능할까요?” 같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글까지 발굴해서 소개한다.

이들 사이트는 고급두뇌들이 하루 몇시간씩 공을 들여서 만드는 것에 비해서 아직 방문자수는 미미하다. 테크니들은 하루 2천명내외, 뉴스페퍼민트는 하루 1천명내외의 독자가 방문한다. 하지만 이들은 쉬지 않고 꾸준하게 매일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뉴스를 정리, 요약하면서 자신들도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도 큰 이유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포진한 최고의 고급두뇌들이 매일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해외뉴스중에 꼭 읽을만한 것들을 골라준다는 점에서 이 두개의 사이트를 강력 추천한다.

/시사인 최근호에 썼던 칼럼입니다.

사족: 윤필구이사, 이효석박사 둘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으로서 처음 사이트 시작할 때 조금하다가 그만두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하지만 지금까지 끈기있게 열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저도 놀랐습니다. 테크니들, 뉴스페퍼민트의 큰 발전을 기원하면서 소개했습니다.^^ -임정욱. 

Written by estima7

2012년 11월 7일 at 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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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기기와 콘텐츠 홍수 속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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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근 애플스토어에 나가 새로 나온 아이패드 미니를 만져보았다. 예전보다 크기만 작아지고 새로운 혁신은 그리 없다고 느낀 제품이지만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아이패드 미니는 올해 미국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온 태블릿 컴퓨터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태블릿, 윈도폰,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 아마존의 킨들 시리즈,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등 전세계를 뒤덮어가는 첨단기기의 행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는 인터넷업계에서 일하기도 하거니와 첨단기기를 사서 직접 써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 일부러 무리해서라도 사서 써보는 편이다. 그런 나도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나오는 스마트 기기의 융단폭격에 피곤을 느끼고 있다. 사서 쓴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첨단기기도 금세 구형으로 전락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이미 집에 있는 티브이, 랩톱컴퓨터, 태블릿컴퓨터, 스마트폰까지 해서 스크린이 10개가 훨씬 넘는다. 그러다 보니 4명의 가족이 대화 없이 각자 자기만의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편리하게 소비하는 콘텐츠도 실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앱만 실행하면 공짜이거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드라마가 사방에 널려 있다. 사놓고 읽지도 못하는 전자책이 내 스마트 기기 속에 잔뜩 들어 있다. 엄청난 양의 신문·방송 뉴스도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 기기로 다 볼 수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인들이 추천해주는 좋은 정보는 얼마나 많은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별마크를 해놓았다가 못 읽고 그냥 넘어가는 글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읽고 싶어서 사놓은 좋은 책들도 끈기를 갖고 읽지 못하고 중단해버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는다. “시간이 없는 것이 한”이라는 말을 되뇐다. 이처럼 나는 정보의 풍요 속에서 생활하며 오히려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정보 편식자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예전엔 이런 고민이 없었다. 콘텐츠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을 돌이켜보면 아침마다 구독하던 조간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롭게 읽었다. 신문광고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고 동네서점에 들렀는데 마침 없어서 주인아저씨에게 주문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구매한 책을 아껴서 음미하며 읽곤 했다. 티브이에서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를 할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가 온 가족이 꼼짝 않고 집중해서 봤다. 기다리던 가수의 레코드판이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닳아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처럼 콘텐츠를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터치 한번이면 책, 신문, 잡지, 영화, 음악 등 온갖 콘텐츠가 순식간에 내 손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빌 게이츠가 ‘당신 손가락 위의 정보’가 세상을 바꾼다고 20여년 전 설파했던 세상이 눈앞에 있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좀 피곤하다. 꼭 이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너무 지나치게 편리해진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없던 세상에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는가?

스마트 기기와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듯싶다. 평소 모바일혁명의 찬미자인 나도 가끔은 정보의 유통이 적고 느린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

/2012년 11월 6일자 한겨레 칼럼.

사실 3년전에 “콘텐츠의 홍수속에서 너무 괴롭다”는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때의 글을 지금 다시 읽고 생각해보니 콘텐츠와 정보의 홍수현상이 3년전보다 더 가중이되면 되었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은 쏟아져 나오는 흥미로운 앱들까지 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잔뜩 쌓여있고 다들 내가 한번만 실행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넘쳐나는 훌륭한 콘텐츠로 즐거움을 느껴야하는데 반대로 조금씩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다.

방법이 없다. 욕심을 버리고 진짜 중요한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시간을 잘 활용해 내가 정말 재미를 느끼는 콘텐츠만 즐겨야겠다. 휴우~

Written by estima7

2012년 11월 7일 at 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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