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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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가 이끄는 회사에 다녔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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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살 당시 근교인 플레밍햄을 지나다가 우연히 Bose본사건물을 본 일이 있다. 고급스피커로 유명한 Bose브랜드에는 익숙해있기에 “아니 저 회사가 여기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Bose는 원래 MIT출신 교수가 창업한 회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교수가 회사의 대부분의 주식을 MIT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보스턴지역에 넘쳐나는 비즈니스감각을 갖춘 백인사업가일 것이라고 여기고 지나갔다.

그런데 어제, 7월12일 그 Amar G Bose교수가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읽어본 NYT의 부고기사가 너무 좋아서 간단히 소개해 본다. 그가 인도계였다는 것을 비롯해 몇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다.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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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한 Amar Bose. 출처 유튜브 동영상.

1929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는 영국지배에 저항하다가 인도에서 옥살이를 하고 미국으로 탈출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일찌기 기계를 다루는데 재능이 있었던 그는 13살때 용돈벌이로 라디오수리를 시작했는데 2차대전당시 어려웠던 집안살림을 돕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Bose를 창업한 계기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클래식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50년대 MIT학생일 당시 샀던 고가의 스테레오시스템의 소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데 실망했다. 그때부터 음향공학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그는 콘서트홀에서 경험하는 소리의 80%가 사실은 벽과 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원리를 응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스테레오스피커를 개발해냈고 64년에 멘토이자 MIT교수인 Y W Lee교수의 권유로 Bose를 창업한다. 이후 68년 그가 만들어낸 Bose 901 Direct/Reflecting 스피커시스템은 25년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Bose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후 Bose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카스테레오시스템 등을 내놓으며 급성장한다.

-Bose Corporation은 비공개회사

2012년 매출이 2조8천억원정도로 추정되며 직원수도 1만명에 육박하는 Bose가 상장기업이 아니라는 것에도 놀랐다. 이것은 Bose박사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R&D를 위해서는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분기 실적을 발표해야하는 공개기업이 되면 월스트리트의 압력에 굴복해 단기실적을 맞추는데 급급하기 쉽다.

“I would have been fired a hundred times at a company run by M.B.A.’s. But I never went into business to make money. I went into business so that I could do interesting things that hadn’t been done before.”-Dr. Bose.

“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돈을 벌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시작한 겁니다.”-Dr. Bose.

-가르침에 대한 열정

그의 연구에 대한 열정 못지 않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그는 56년에 MIT교수가 된 이후 45년간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특히 공학뿐만 아니라 인생이야기까지 곁들인 MIT에서 소문난 명강이었던 것 같다. 동료교수와 학생의 이야기.

“He talked not only about acoustics but about philosophy, personal behavior, what is important in life. He was somebody with extraordinary standards,” Professor Oppenheim said.

“그는 음향학뿐만 아니라 철학, 개인의 자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훌륭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His class gave me the courage to tackle high-risk problems and equipped me with the problem-solving skills I needed to be successful in several careers. Amar Bose taught me how to think.”

“그의 수업은 높은 위험을 가진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여러 커리어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문제해결능력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르 보스는 ‘생각하는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Bose교수는 엔지니어링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관련된 배경을 설명해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유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

2011년 그는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했다. 다만 MIT는 매년 현금배당금을 받을뿐, 이 주식을 양도하거나 회사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Majority stock’이라고 나와있으므로 이 주식에 Voting right이 있다면 회사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인 것 같다. 구체적인 기부금액은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8년 포브스 미국부자랭킹에서 15억불의 자산가치로 321위에 올랐을 정도의 부호였으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MIT기부금액은 조단위 가치일 것이 분명하다.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그는 억만장자였지만 소박하게 살았다. 그가 2011년 한 영국신문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I don’t want a second house, I have one car, and that’s enough. These things don’t give me pleasure, but thinking about great little ideas gives me real pleasure.”

“나는 별장을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차 한대가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것들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지만 훌륭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둘이 있는데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들인 Vanu는 MIT를 공학전공으로 졸업하고 역시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Vanu Inc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참 멋진 인생, 멋진 부고기사다. 위 내용은 대충 요약한 것이니 원문을 한번 읽어보시길.

Amar G. Bose, Acoustic Engineer and Inventor, Dies at 83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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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tima7

2013년 7월 13일 at 11:42 오후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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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 초였다. 하버드대학에서 생겨난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아이비리그 학교들을 중심으로 급성장 중이라는 것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이야기였고 또 대학생이 아니면 가입할 수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06년 9월, 드디어 페이스북은 이메일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일반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나는 곧바로 페이스북에 가입해 사이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그간의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페이스북은 무엇보다 쉽고 단순한 인터페이스(연결장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SNS인 마이스페이스(MySpace.com)사이트의 산만한 디자인과 넘쳐나는 스팸에 실망한 터라 페이스북의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점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나서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에 알고 지내다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는 기쁨도 누렸다.

미국 언론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를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야후의 인수 제안을 차버린 겁 없는 젊은이로 소개했다. 우리 돈으로 1조 원에 이르는 거액을 보기 좋게 거절한 그의 배짱도 놀라웠지만 겨우 20대 초반의 청년이 1조 원 가치의 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후 2007년 5월, 페이스북 개발자 콘퍼런스 ‘f 8’에서 페이스북을 전 세계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 그래프(social graph)’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저커버그의 발표 동영상을 보고 그 창의적인 개념과 비전에 놀랐다. 분명 그는 대단한 천재이자 비저너리(visionary-혜안가)였다.

나는 당시 스티브 잡스가 처음 선보인 아이폰과 함께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이 앞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고 주위에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페이스북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고 내 페이스북친구 가운데 한국에 사는 사람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9년 3월,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로 부임한 나는 페이스북이 얼마나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실감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시간대가 서로 다른 드넓은 국토에 흩어져 사는 경우가 많은 미국인들에게 페이스북은 그야말로 서로를 연결하고 안부를 전하는 소중한 ‘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미국인 직원에게 “고향에 계신 80대 할머니가 자기와 연락을 하고 싶어 페이스북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기도 했다. 확실히 페이스북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내 블로그 참고글 : 미국인들에게 있어 페이스북이란(2009년),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페이스북(2010년))

놀랍게도 그즈음부터 한국에서도 페이스북 이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모두에게 잊힌 사람이 될 뻔했던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Twitter를 통해 한국의 친구나 지인들과 예전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인맥을 유지하고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이러는 동안 저커버그라는 인물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 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젊은 청년을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제국의 창업으로 이끌었을까? 세상을 바꾸는 소셜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얼마 후 그런 의문에 해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에 만난 NHN 김상헌 대표에게서 저커버그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2011년 11월,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벤처투자가인 유리 밀너(YuriMilner)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밀너의 생일파티에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인터넷 기업 CEO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는가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풀이 죽어 있던 김 대표 앞에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김 대표는 자신이 한국 최고의 검색엔진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CEO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저커버그가 예상외로 반색을 하며 “네이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내일 우리 회사에 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었던 김 대표가 정중히 거절하자 저커버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음에 오면 꼭 연락해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김 대표는 다른 오만한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달리 의외로 겸손하고 호기심 많은 저커버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우리 모두가 저커버그를 과소평가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에 창업한 회사를 10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커버그는 어린 나이에 전례 없는 최강 기업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이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커버그의 나이와 경험 부족 너머에 있는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다.

인텔의 소셜마케팅 전문가인 예카테리나 월터(Ekaterina Walter)가 쓴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 Think Like Zuck 》 는 저커버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저자는 저커버그가 어떻게 해서 지난 10년 동안 10억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사이버 제국을 세울 수 있었는지 열정, 사명, 사람, 제품, 파트너십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을 들어 설명한다. 저커버그의 신념과 경영 원칙을 비롯해, 그의 성장 과정과 페이스북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에 대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저커버그의 창업가정신, 혁신적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강력한 실행력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자세히 다루고 있어 저커버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재포스, 컬리지유머, 엑스플레인 등 다른 혁신적인 회사들의 사례를 소개한 점 또한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요소다.

저커버그가 제대로 된 기업문화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페이스북의 기업공개 투자설명서에 쓴 ‘페이스북의 존재 이유’ 라는 그의 서신을 읽어보면 그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개발자 출신답게 그가 제시한 ‘해커웨이(the Hacker Way’) 는 최고의 개발자 집단인 페이스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해커웨이는 개발자의 힘으로 뭔가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끈질기게 매달려 일을 완성시키는 페이스북의 접근방식이다.

'The hacker way'를 표방하는 페이스북답게 멘로파크의 페이스북본사에는 거대한 'HACK' 문자가 그려져 있다. (구글맵에서)

‘The hacker way’를 표방하는 페이스북답게 멘로파크의 페이스북본사에는 거대한 ‘HACK’ 문자가 그려져 있다. (구글맵에서)

저자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단시간 내에 페이스북을 구글, 애플, 아마존닷컴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4대 IT 기업으로 부상시킨 저커버그의 성공 방정식을 통찰력 넘치는 필치로 소개한다.

창업을 꿈꾸는 예비창업자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이 책은 이미 창업을 해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는 신생기업가들에게 기업을 키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일깨워줄 것이다. 그리고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영자들에게는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문화를가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좋은 힌트를 준다. 경영자로서 마크 저커버그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임정욱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 예카테리나 월터 지음|황숙혜 옮김|청림출판|320쪽|1만5000원 -다음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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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아이패드혁명‘, ‘인사이드애플‘로 인연을 맺은 청림출판의 송상미팀장의 부탁으로 감수하게 된 책. 평소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수를 수락했다. 바쁜 와중에 짬짬이 틈을 내서 감수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2012년 5월의 IPO이후 공모가 38불에 휠씬 못미치는 25불정도의 주가(7월1일현재)를 보이고 있어 페이스북이 고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쉽게 주저앉을 회사라고 보지 않는다.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아직 젊고 큰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것 같고 프로덕트를 최우선시하며 쉐릴 샌드버그 같은 인재를 포용해 일을 맡길줄 아는 경영자로서의 그릇이 있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가 아직은 큰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IPO이후 부진은 어느 정도 작은 역경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 정도의 고난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실패의 경험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6월 30일 at 8:31 오후

17세 벤처신화의 주인공, 섬리의 닉 델로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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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영국소년이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13년 3월25일 야후는 영국의 고등학생 닉 댈로이시오가 개발한 섬리(Summly)라는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인수금액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테크블로그매체인 올씽스디지털은 인수가가 3천만불, 즉 한화로 3백3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상당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17세의 고교생은 적어도 1백억원이상의 돈방석위에 올라앉게 된다.

댈로이시오가 만든 앱은 ‘섬리’다. 다양한 소스의 뉴스를 스마트폰에서 보기 쉽게 400자 이내로 자동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모바일앱이다. 지난해 11월에 아이폰용으로 발표되어 지금까지 1백만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당시에도 16세 소년이 발표한 앱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이 앱은 단순히 뉴스기사의 앞부분만 잘라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통해서 중요한 내용을 순식간에 요약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즉시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해 봤었는데 사용하기 편리한 깔끔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매출도 전혀없는 이런 앱을 야후가 3백억이 넘는 거액에 인수한 것에 좀 놀랐다.

아마도 사상 최연소 벤처대박신화를 이룬 인물로 기록될 댈로이시오를 사람들은 그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길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댈로이시오의 성공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모바일앱을 만들어 발표한지 벌써 6년째가 됐고 그동안 인정받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한 나름 중견(?)창업가이기 때문이다.

신화탄생의 계기는 아이폰과 연관이 있다. 2008년 댈로이시오가 12살때 그는 애플키노트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외부개발자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폰앱을 개발해 앱스토어를 통해 발표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날 그는 바로 애플스토어에 가서 “아이폰앱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나요”하고 물어봤다. 컴퓨터언어 C를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멍청이도 할 수 있는 C’라는 컴퓨터언어입문서를 사서 바로 공부를 시작,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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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번째 아이폰앱인 ‘페이스무드’는 페이스북친구의 글을 분석해서 아이콘으로 친구들의 기분을 보여주는 아이디어앱이었다. 16살이상이어야 앱을 등록할 수 있는 앱스토어의 규정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첫번째 앱을 등록했다.

그뒤 그는 텍스트분석기술을 더 발전시켜 섬리의 원형이 되는 ‘트리밋’(Trimit)이라는 앱을 15살때 발표했다. 그는 당시 기즈모도라는 테크매체에 이 앱에 대한 기사를 실어달라고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기자를 질리게 했다. 그가 겨우 15세 소년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기자는 결국 그를 인정하고 기사를 실어주었다. (참고 내가 어떻게 15살짜리 앱개발자를 울렸나-기즈모도) 그런 편집광적인 열정과 노력 덕분인지 이 앱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언론보도를 본 홍콩의 거부, 리카싱의 투자팀이 그에게 메일을 보내 20만불의 초기투자로 이어지게 됐다. 그는 이 투자로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을 임대해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CEO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Summly는 대략 이런 분위기로 400자내로 뉴스를 요약해줌.

Summly는 대략 이런 분위기로 400자내로 뉴스를 요약해줌.

이후 애쉬톤 커쳐, 오노 요코, 스티븐 프라이 등 유명인들이 줄줄이 그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속에서 그는 트리밋을 발전시킨 섬리를 지난해 11월에 발표하고 불과 4개월만에 회사를 야후에 매각하게 된 것이다.(위 홍보동영상 참고)

댈로이시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도 1년반이 남았다. 그는 그 기간동안 야후의 런던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할 예정이다. 야후는 이 매력적인 컴퓨터천재 미소년을 회사를 상징하는 얼굴역할인 대변인으로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의 CEO 마리사 메이어는 아무래도 섬리라는 앱보다는 댈로이시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껴서 거액을 투자한 듯 싶다.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추가 생각1 : 야후는 이 인수발표와 함께 Summly를 앱스토어에서 제거해 버렸다. 덕분에 정작 이 인수보도를 쓴 많은 기자들은 실제로 Summly를 써보지 못한 듯 싶다. 나는 지난해말에 이 앱이 나오자마자 한번 설치해본 덕분에 다시 써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3백억이나 주고 살만한 앱이고 기술인지는 솔직히 의아하다. 사실 고도의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뉴스기사는 리드 부분을 옮기기만 해도 요점을 전달하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섬리의 UI는 깔끔하고 멋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도 한번 써보고 나서 이 뉴스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완전히 이 앱에 대해서 잊어버린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듯 싶다. (요즘은 사실 좋은 뉴스앱이 너무 많다.) 완전 자체기술도 아니고 (SRI의 기술을 라이센스), 수백만명의 고정사용자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지른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워낙 어리고 말 잘하고 잘 생긴 댈로이시오의 상품가치(?) 덕분에 야후는 충분한 홍보효과를 누린 듯 싶다. NBC뉴스 등 프라임타임뉴스에서 이 소식을 중요하게 다뤘으며 댈로이시오는 모닝쇼의 인기게스트가 됐다. 야후가 유망한 모바일스타트업을 열심히 인수하고 있다는 훌륭한 홍보소재가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통찰력이 넘치며 오리지널한 혼이 깃든 기사를 정성들여 쓰고 있는 언론종사자들에게는 좀 힘이 빠지는 뉴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글이 많은 뉴스매체라고 해도 누가 선뜻 몇백억이 아니라 몇억도 투자하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댈로이시오의 섬리에 루퍼트 머독이 투자했다…)

추가 생각2: 애플의 키노트발표에 자극받은 영국소년이 앱을 만들었다. 이 소년은 자신의 앱을 미국의 테크블로그매체에 직접 접촉해서 홍보했다. 이것을 본 홍콩의 거부가 이메일로 연락해서 첫 투자로 이어졌다. 영국, 미국의 유명인들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이 소년은 그들의 도움으로 새 앱을 발표해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의 야후가 이 영국소년의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서 꼭 실리콘밸리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8일 at 5:23 오후

RIP 로저 이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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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오늘 2013년 4월4일 세상을 떴다. 향년 70세.

2010년 2월의 에스콰이어지 커버스토리. 로저 이버트의 건강하던 옛날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은 큰 충격을 줬다.

2010년 2월의 에스콰이어지 커버스토리. 로저 이버트의 건강하던 옛날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은 큰 충격을 줬다.

내가 에스콰이어지의 The Essential Man이란 기사를 읽고 “목소리를 읽어버린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 이야기“라고 블로그에 썼던 것이 약 3년전이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말을 하는 재담꾼이었던 그가 암으로 아래턱을 잃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목소리도 잃게 됐지만 절망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글을 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감동적이었다.

“When I am writing, my problems become invisible, and I am the same person I always was,”

“내가 글에 몰입할 때면, 나의 장애는 사라지고, 나는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에스콰이어지에 했던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1년 TED에 나와서 자신이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목소리를 되찾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출처:로저이버트저널

출처:로저이버트저널

불과 그저께 로저 이버트는 “Leave of presense”라는 마지막 블로그포스팅을 통해 “암이 재발해서 방사선치료를 받느라고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볼 수가 없다”며 “할 수 없이 일의 양을 줄이겠다”고 썼었다.

그는 그리고 자신이 평소 매년 2백개가량의 영화리뷰를 쓰는데 작년에는 306개로 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병마와 싸우면서 좀 영화평을 줄이고 암투병과 관련된 글을 좀 써볼까 한다고 블로그에 밝혔었다. 그런데 불과 이틀만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나는 트위터로 그를 팔로우하고 그의 열정적인 트윗도 항상 봐왔기 때문에 웬지 마음이 찡하다. 소문난 리버럴인 그는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했고 총기규제 등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정열을 불태우는 모습이 웬지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 잡스도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수척한 모습으로 키노트이벤트를 진행하고 애플 제2캠퍼스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 쿠퍼티노시의회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Roger Ebert.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4일 at 4:27 오후

일주일 걸려 쓴 책, 십년 걸려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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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출판으로 책이 뚝딱뚝딱 나오는 시대. 한국 서점에 가서 인기있다는 책들을 들춰보는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차를 보니 참으로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적혀있는 책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책을 너무 쉽게 쓴다고 할까. 유명인의 책이면 내용이 없어도 무조건 팔리는 것인가. 조류에 맞춰 빨리 책을 내야해서 그런 것인가.  심지어 일주일만에 책을 써낸다는 분도 계시다. (직접 보지 않아서 평가하긴 어렵지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쓸 수 있을까 솔직히 믿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절반쯤 읽고 있는 33대 미국대통령 해리 트루만의 전기 “Truman”를 보면 책의 가치, 작가의 자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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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20페이지짜리 대작. 이 지루할 것 같은 전기가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고졸출신 미주리 시골촌놈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되서 일본에 원자탄을 투여하는 결정을 내리고, 2차대전을 수습하고, 마샬플랜으로 유럽을 지원하고 한국전까지 이끄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 덕분에 트루만의 재평가가 이뤄졌다는 말이 수긍이 간다.

세계최강국인 미국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끈 한 인간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고뇌, 리더쉽의 중요성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나의 인생과 비교하면서 용기까지 얻고 있다.

데이빗 맥컬로

데이빗 맥컬로

어떻게 하면 이런 엄청난 책을 써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데이빗 맥컬로라는 79세의 역사학자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의 글솜씨도 탁월하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자세히 묘사해냈다는데 감탄해서 (트루만을 읽고 있는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맥컬로라는 작가에 대해서 위키피디아 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더더욱 이 작가에 매료되어 버렸다. 다음은 그가 ‘Truman’을 어떻게 썼는가에 대해 소개한 NYT기사의 일부다. 책을 출간할 당시 그는 58세였다.

  • 맥컬로는 친척과 경호원을 포함해 생전의 트루만을 아는 사람을 수백명을 인터뷰했다. 트루만이 생전에 쓴 편지와 관련된 사람들의 문서를 끝도 없이 읽었다. 그리고 트루만에 대해서 쓰여진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 트루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맥컬로는 트루만 생전의 습관을 그대로 흉내내고 재현해보고자 했다. 예를 들어 트루만처럼 아침산책을 했고 트루만의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잠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루즈벨트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했을 때 트루만이 달려갔다는 미국 의회에서 백악관으로 길을 그대로 따라서 답사하기도 했다. 당시 트루만이 놓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공부한 다음 자신을 그 환경에 두고 트루만의 심리상태를 이해해보고자 한 것이다.
  • 책을 쓰면서 맥컬로는 모든 페이지 초고를 부인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인이 그 페이지들을 자신에게 다시 읽도록 해 들어보았다. 이렇게 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볼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용의 쓸데없는 반복이라든지 어색한 문장 같은 것 말이죠. 화가들은 자주 자신의 작품을 거울에 비춰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캔버스에서 바로 봤을때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기도 하니까요.”
  • 맥컬로는 이 책을 10년간에 걸쳐서 썼다. 그 10년동안 그의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가장 어린 딸이 소녀에서 여인이 됐고, 그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그의 가족이 두번 이사를 갔으며 애들을 대학에 보내고 주택장기융자를 다 갚았다. 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이렇게 공을 들여 써서 92년 출판된 “Truman”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7년 걸려서 집필해 2001년 출간한 미국의 2대대통령에 대한 전기 “John Adams”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논픽션책중 하나이며 역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 다음에 2005년에 출간된 맥컬로의 다음 작품 “1776″은 그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초판만 1백25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내가 데이빗 맥컬로의 책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히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그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다. 아랫 부분인데 특히 이 대목이 웬지 눈에 들어왔다. 노작가의 겸손.

두번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수많은 작품을 출간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그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79세인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스토리텔러다.

Americans now hear their history in David McCullough’s clarion voice, the one that narrated the acclaimed Civil War and American Experience documentary series. Still, the two-time Pulitzer Prize winner and author of popular and praised histories of Harry Truman, John Adams, and Theodore Roosevelt, among others, doesn’t consider himself an expert on anything. (“If you think you are, you’ll get yourself in trouble.”) He is a storyteller first, who, at 79, is celebrating the success of his most recent book, The Greater Journey, about Americans in Paris, and who says he is “fired up” to start his next book.

이런 훌륭한 작가가 넘쳐나는 미국의 출판계가 부럽고 또 이런 좋은 책을 열렬히 사주는 두꺼운 독자층이 있는 것도 부럽다. 문득 든 생각.

Written by estima7

2013년 2월 28일 at 4:18 오후

린스타트업의 에릭 리스 인터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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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린스타트업’으로 유명한 에릭 리스를 만났다. 아래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실린 간단한 인터뷰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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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스타트업 한글판표지와 에릭 리스

린스타트업 한글판표지와 에릭 리스

2011년 말 미국 포린폴리시지(誌)는 100명의 세계 지도자(Global Thinker)를 선정해 그들에게 ‘올해 가장 영감을 준 책‘을 추천받았다. 여기에 에릭 리스(Ries·33)라는 낯선 인물이 쓴 책 ‘린스타트업’(Lean Startup)도 포함됐다. (린스타트업 한글판 링크)

‘린스타트업’은 리스가 한 벤처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 전략과 최초 아이디어가 실패했을 때 대응법, 성장 노하우 등을 담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그가 관여한 IMVU는 2011년 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컸다. 그는 이 책이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2011년 리더가 읽어야 할 책 10′에 뽑히면서 세계적 명사(名士)가 됐다. Weekly BIZ가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에릭 리스를 만났다.

1. ‘린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누가 나의 고객이 될지, 내가 시도하는 이 방법이 먹힐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적 접근의 방법론이다. 낭비를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도요타의 ‘린(Lean·슬림) 제조방식’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의 관리에 접목한 것이다. 전통적 경영에서는 엄밀한 시장조사를 거쳐 완성도 높은 제품을 개발해 내놓지만, 스타트업 같은 소규모 조직에서는 자원이 제한적이어서 불가능하다. 린스타트업은 기존 방식과 달리 신속한 피드백을 통한 제품 개발, 빠른 실험, 그 결과에 따른 실천을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의미한 지표에 의지하지 않고 실제 성과를 측정해 고객이 원하는 바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2. 이 이론은 당신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데.

“나는 2004년 IMVU 라는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서 제품 개발을 맡아 ’3D 아바타’를 이용해 인스턴트 메신저 채팅이 가능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6개월간 밤낮없이 일했다. 완성도 낮은 제품을 내놓으면 평판이 떨어질까 봐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고객들은 출시된 우리 제품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의 관심과 동떨어진 제품을 개발하느라 6개월을 허비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낭비를 줄이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빨리 개발할 수 있을까 고민과 연구를 했다.”

3. 낭비는 어떻게 피할 수 있나?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보다 ‘최소 요건 제품(Minimum Viable Product·MVP로 약칭)’을 만들어야 한다. MVP는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학습이 가능한 최소의 기능을 최소의 노력을 들여 만든 제품이다. 이 제품을 통해 고객의 반응을 얻은 뒤 빨리 보완하는 것이다. 제조→측정→학습(Build-Measure-Learn)의 피드백 순환을 만든 뒤 과정을 계속 빠르게 반복하며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 하는’ 게 요체이다.”

4. ‘린스타트업’에서 당신이 강조한 ‘피봇(pivot·방향 전환)’은 실리콘밸리는 물론 전 세계 스타트업에서 유행어가 됐다. 어떤 뜻인가?

“피봇은 최소 요건 제품을 통해 고객의 반응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나아가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방향 전환을 한다는 의미이다. 처음 가설을 세웠는데 고객 반응을 받아보니 틀렸다면 반응 등을 토대로 제품 개발을 새 방향으로 트는 것이다.”

그는 피봇의 대표 사례로 세계 최대 소셜커머스 서비스인 그루폰(Groupon)을 들었다. 그루폰은 당초 인터넷에서 투자자금을 모으는 사이트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지만, 온라인 공동구매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공동구매 쿠폰 사업으로 방향을 틀어 성공했다.

5. 당신의 이론은 인터넷 분야에만 적용되나?

“그렇지 않다. 일반 기업에도 가능하다.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는 시대다. 어떤 기업도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를 모르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GE 같은 대기업도 요즘 신제품 개발 시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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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부시시한 모습이라고 사진을 안찍겠다는 것을 억지로 졸라서 찍었다.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그의 부인.

집에서 부시시한 모습이라고 사진을 안찍겠다는 것을 억지로 졸라서 찍었다.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그의 부인.

“당신이 마침 그 동네에 있으니 한번 만나보면 어때?” 지난 12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송의달편집장에게 흥미로운 요청을 받았다. 린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를 지면에 소개하고 싶은데 한번 만나보고 간단한 인터뷰기사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고 같은 인터넷업계인으로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바로 승락했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린스타트업’을 한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린스타트업’, ‘피벗(Pivot), ‘MVP’는 거의 실리콘밸리의 유행어, 상투어가 되다시피했을 정도다.

내가 그의 린스타트업이론을 처음 접한 것은 사실 굉장히 오래됐다. 2010년 5월에 Web 2.0 Expo컨퍼런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는데 바로 유튜브에 올라온 15분짜리 그의 발표동영상을 접했다.

이때는 린스타트업책이 출판되기도 1년도 휠씬 더 전이고 사람들도 거의 잘 모를때였다. 자신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개발방법론을 설파하는 이 사람의 얘기가 솔깃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당시 라이코스의 프로덕트매니저들과 같이 이 동영상을 한번 더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그는 완전히 무명이었고 그가 일했다는 IMVU라는 회사도 한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당시 그는 CTO로 일하던 IMVU에서 나와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하던 때였다. 그런데 2년반뒤 나는 실리콘밸리의 명사이자 구루(Guru)가 된 그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나면서 린스타트업이론보다 그가 어떻게 해서 그 책을 쓰게 됐고 실리콘밸리의 구루가 됐는지 그 과정이 더 궁금했다. 아래는 위 기사에 추가하고 싶은 대목 몇가지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유명해졌나?

“나도 사실 얼떨떨하다. 나는 사실 블로그를 열심히했을 뿐이다. 내가 CTO로서 겪은 어려움을 보다 낫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항상 고민하면서 블로그에 정리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러다가 몇군데 나가서 발표하고 강연요청을 받고 그러다가 책을 쓰게 됐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인튜이트의 스캇 쿡 창업자가 당신을 초청해서 회사내 직원 수천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갖게 하고 린스타트업이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엄청난 거물이 당신을 불러서 강연하게 했는가?(Intuit는 세금보고소프트웨어인 TurboTax로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시가총액이 20조원에 가깝고 직원이 8천명이 넘는 대기업이다. 창업자인 스캇 쿡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나도 신기하고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린스타트업을 처음 알리기 시작했을때 어딘가 나가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그것을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폰으로 찍어서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렸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스캇 쿡이 보고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런 사람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나. 덕분에 인튜이트에 가서 몇천명의 직원앞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대기업인 인튜이트가 린스타트업 이론을 적용해서 ‘Snaptax’라는 혁신적인 아이폰 세금보고앱을 개발한 이야기가 린스타트업책 1장에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또 포브스지의 “인튜이트는 왜 당신의 회사보다 혁신적인가“라는 기사에도 이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활용하나.

“트위터를 열심히 한다. 사실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블로깅을 할 시간이 없다. 한달에 한번도 업데이트를 못할 때도 있다. 그런데 트위터는 쉽게 할 수 있고 계속해서 내 팔로어들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그는 9만2천명의 팔로어가 있다. 에릭 리스의 트위터계정 링크)

한번은 초기에 런던에서 린스타트업강연을 하는데 청중중 어떤 사람이 트윗으로 내 강연을 중계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LA의 파워트위터인 빌 그로스(아이디어랩 창업자)가 리트윗하면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진 일이 있다. 나는 빌이 누군지는 알지만 직접 만난 일은 한번도 없었다.

팔로어들이 내게 전달해주는 피드백과 정보도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알아야할 정보는 거의 10분안에 트위터로 내게 전달된다. (웃음) 9만명이상의 정보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뉴욕에 출판에이전트가 있는데 일주일전에 트위터로 전달받아 알고 있는 정보를 대단한 뉴스처럼 내게 전달해오는 일도 잦다.

그래서 언제나 강연을 시작할때 청중들에게 전화나 컴퓨터를 꺼내놓고 마음껏 트윗을 하라고 권유한다.

-어떻게 해서 린스타트업이란 이론을 생각해내게 됐나?

“항상 읽고 생각하는 것이 취미다. 문제에 직면했을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관련 자료, 책을 널리 읽으며 방법론을 생각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혹시 당신은 유대계인가?

“맞다.”

(질문과 토론을 통해 공부하는 것이 유대계의 특징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대인 같다고 느껴서 물어봤는데 역시 그랬다. 다만 그는 린스타트업이론을 만들어낸 것과 자기가 유대계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만 그도 부모님이 다른 유대계 부모처럼 교육열이 대단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는 2년반전에 처음 봤을 때는 완전 무명이었던 청년이 지금은 이렇게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구루가 됐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는 예일대를 나왔지만 인터뷰중에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자라서 동부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라고만 말했다. 석박사학위 소지자도 아니다. 그가 다니던 IMVU는 당시 별로 유명한 스타트업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무명인사가 생각해낸 이론을 실리콘밸리의 벤처커뮤니티가 열광하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자체가 실리콘밸리의 “Open mind”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쉬울 것 없는 대기업의 억만장자 오너가 무명의 청년을 불러 수천명의 직원들에게 강연을 시키고 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놀랐다.

얼마전 한겨레칼럼 “미국의 혁신, 책의 힘“에서도 썼지만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고 그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고 강연 등을 통한 나눔을 통해 또 새로운 혁신을 낳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힘인 것 같다는 점을 에릭 리스와 이야기하면서 다시 느꼈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2월 23일 at 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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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 Entrepreneur, 마이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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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 Entrepreneur라는 말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창업해서 한번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지칭한다.

나는 항상 이 말을 들으면 Mysimon.com의 창업자이자 Become.com의 전CEO이신 마이클 양을 떠올린다. 오늘 마침 그를 인터뷰한 연합뉴스의 기사 ‘마이사이몬’ 마이클 양 “세계 겨냥 창업 바람직”을 읽으면서 그 분에 대해서 한줄 적어 본다.

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UC버클리의 경영대학원인 Haas school of business를 다녔는데 2001년 당시 1학점짜리 인터넷관련강의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시간짜리인 이 강의는 학생들이 직접 섭외해서 외부스피커를 초청해 진행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나도 뭔가 기여를 하기 위해 초청을 할만한 외부인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2000년 1월 쇼핑 가격비교 검색엔진인 Mysimon.com7억불에 CNET에 매각해 유명해진 마이클 양이 Haas MBA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서 강의에 외부연사로 초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트위터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를 찾고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이클 양이 강연요청을 수락해주셔서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닷컴버블이 꺼졌다고는 하지만 당시 환율로 거의 1조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회사를 매각한 것이기에 나는 강연에서 자신의 성공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접한 마이클 양은 조용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며 성공은 단지 행운이었다고 계속 반복해서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내 손으로 만든 마이사이먼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CNET와서 사겠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지만 내 투자자들과 내 집사람까지 포함해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모두 파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를 팔았는데 그리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나스닥시장이 폭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말 Lucky했다고 성공을 운으로 돌렸다.

그때까지 나는 (기자로서의 경력을 통해) 닷컴붐으로 벼락부자가 된 뒤 잘난 척을 하는 기업가들을 많이 봐왔기에 마이클 양의 그런 겸손한 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이클 양은 그뒤 오래지나지 않아 Netgeo라는 회사를 창업하셨고 그 뒤 이어진 한 만남에서 “왜 또 기업을 시작하셨는가?”라는 내 질문에 “창업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Mission)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즉, 첫 기업을 통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업을 시작해서 성공시키는 것이 사회에 다시 보답을 하는 길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나는 평생 놀아도 될 만큼 돈을 많이 번 실리콘밸리의 거부들이 또다시 창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투자자로서만 유유자적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왜 또 저런 고생을 사서 할까? 하지만 마이클 양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Serial entreprenuer들이 실리콘밸리의 오늘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티브 잡스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창업한 애플을 나와서 넥스트컴퓨터를 만들고 픽사를 인수해 성공시킨 Serial Entrepreneur 아닌가.

연합뉴스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 9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왕성하게 창업과 경영활동을 했는데 원동력이 무엇인가.

▲ 몸속에 창업 DNA가 있는지 모르겠다. 창업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기회를 보고 아이디어를 이용하고 기술을 응용해 새 회사를 차린다는 게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기(실리콘밸리)서는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마이사이먼을 시작할 때 이미 37세였다. 40대, 50대에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한국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도 40대에 명예퇴직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또 내가 몰랐던 것은 “마이사이먼 당시 자금조달을 위해 200곳을 찾아갔으나 195곳에서 거절당했다. 전문 투자가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정말 안 되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라는 부분이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우리는 항상 “7억불 매각 대박”이라는 기사제목만 보고 쉽게 성공했구나 하는데 자세히 이면을 들여다보면 항상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앵그리버드를 내놓기 전에 로비오도 51번의 그저그런 게임을 내놓으며 실패를 맛보았다고 하지 않던가.

2002년 5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한동안 마이클 양을 다시 뵙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7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Daum Knowledge Officer라는 직함을 가지고 실리콘밸리를 다시 왕래하면서 마이클 양을 다시 연락드리고 뵙게 됐다. 나를 잘 기억해주고 계셨다. 이번에는 Become.com이라는 마이사이먼과 비슷한 가격검색엔진 스타트업을 시작하셔서 왕성하게 또 기업을 이끌고 계셨다.

이후 2009년 내가 라이코스CEO를 맡게 되면서 더 자주 연락드리고 미국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노하우를 자문받았다. 가끔 사람고민까지 포함해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나의 CEO멘토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합뉴스인터뷰를 통해서 마이클 양 자신도 유료로 전직 CEO출신 “CEO코치”의 자문을 받고 계신 것을 처음 알았다. 내게 공짜로 조언은 물론 밥까지 자주 사주셨는데… (감사합니다!)

– 창업과 경영과 관련해 멘토가 있는지.

▲ 특별한 멘토는 없지만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지난 2년간은 CEO를 상대로 전문적인 조언을 주는 전직 CEO 출신 ‘CEO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시간당 400달러나 되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고 사적인 일까지 들어주고 중립적인 피드백을 준다.

이 기사를 보고 다시 느꼈는데 CEO에게는 믿고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멘토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회사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정말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비용까지 들여가면서 CEO코치를 받고 계신지는 몰랐다. 그만큼 그 가치와 필요성을 알고 계신 탓이리라.

지난 3월 Become.com의 CEO에서 이사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마이클 양을 뵙고 식사를 한 일이 있다. 8년간 쉼없이 이끌어왔던 Become.com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제는 재충전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평소 미국의 유대인이나 중국인, 인도인커뮤니티에 비해 한국인들의 네트워크파워가 약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하셨는데 이번에 ‘CKA(Council of Korean Americans)’를 결성하셨다. 권율, 샘 윤 등 성공한 한국계2세들이 참여한 CKA는 6월7일 백악관에서 Korean community를 위한 브리핑행사를 개최한다. 감사하게도 나도 초청해주셔서 그날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인터뷰를 연합뉴스에서 접하고 블로그에 가볍게 그 분과의 인연을 적어보았다.

Written by estima7

2012년 5월 28일 at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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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를 방문한 비빔밥유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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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갑자기 “비빔밥유랑단이라고 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장난치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5명의 젊은이들이 전세계를 일주하면서 한국음식의 자랑거리중 하나인 비빔밥을 홍보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고는 절로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라고 무릎을 쳤다.

그것도 일부러 보스턴외곽에 위치한 우리 회사까지 와서 비빔밥 소개 이벤트를 해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라이코스에 온 뒤로 직원들과 점심을 할때마다 일부러 좀 멀리 떨어진 한국식당(사실은 한국인이 오너인 스시레스토랑에서 한식메뉴를 몇가지 내놓는 것)에 자주 가고는 했다. 내가 한식을 꼭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한국음식을 소개해주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모회사가 한국회사임에도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한국음식을 한번도 먹어본 일이 없는 직원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보스턴은 아시아에서는 먼 곳이다. 좋은 아시안레스토랑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나는 주로 적극적으로 돌솥비빔밥을 권하고는 했는데, 건강식이고 맛이 좋아서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솥밥이 너무 뜨거워서 또 매워서 잘 먹지를 못하거나, 잘 비비지를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사장앞이라서 내색을 안한다 뿐이지 다시 와서 비빔밥을 또 먹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래서 최근에는 나도 포기하고 거의 한식당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러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비빔밥을 홍보하고 직접 한그릇씩 서빙해준다고 하니 너무나 고맙고 기뻤다. 어제 점심시간에 많은 직원들이 모여서 비빔밥에 대해 배우고 직접 맛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그 사진들.(비빔밥유랑단의 김수찬님에게 제공받은 것들)

라이코스의 마스코트인 리트리버와 참기름, 고추장.비빔밥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감탄하면서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있는 나.

미리 준비된 비빔밥에 적당히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비비는 법까지 설명.

나중에는 꽤 많은 직원들이 와서 진지하게 경청.

세일즈매니저인 낸시는 "비빔밥유랑단은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연신 감탄. 비빔밥도 맛있다고.

비빔밥을 아이폰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크리스.

위의 크리스가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비빔밥사진.

끝나고 나서 기념사진.

비빔밥유랑단 덕분에 우리 직원들이 색다른 한국문화를 접하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인사장으로서 참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오늘은 한 직원에게 이런 메일도 받았다.

Hi Jungwook, I just wanted to say thanks so much for the lunch yesterday. The food was spectacular, and it was great learning about Korean culture. It’s fantastic that you made the effort to get the bibimbap backpackers in here.

전세계를 돌며 100개의 비빔밥테이블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로 뭉친 5명의 젊은이들. 강상균, 김명식, 김수찬, 박현진, 정겨운. 이런 친구들이 진짜 문화대사가 아닌가 싶다. Thank you!

참조-비빔밥유랑단 홈페이지 http://plusminers.blog.me

Written by estima7

2011년 11월 22일 at 6:19 오후

학선님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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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본부의 정든 친구들…. 평생 못잊을 것 같습니다. 

같이 고생 많이 했어요. 특히 학선님, 한가운데서 매번 어려운 결정을 같이 내린 동지로 기억합니다. 

SKT를 뒤집을 만큼 멋진 활약을 해주시길~

p10604501

Written by estima7

2008년 11월 5일 at 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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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님 생일-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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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협력본부 대외협력팀의 빠질 수 없는 분위기 메이커~ 정은님의 생일잔치입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케이크를 고른 센스가 좋아요~ 생일 축하합니다!

Written by estima7

2008년 8월 29일 at 5:53 오전

people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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