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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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시스터스 – 아름답게 늙어가는 네 자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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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에서 아주 여운이 남는 사진들을 발견했다.

니콜라스 닉슨이라는 사진가가 찍은 ‘브라운 시스터스’(Brown Sisters)(NYT기사링크)라는 시리즈사진이다.

1975년 여름 니콜라스는 커넥티컷주에서 아내 비비(Bebe)의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아내와 다른 3명의 자매들의 사진을 찍었다.(비비는 오른쪽에서 두번째) 한여름의 자연을 배경으로 자유로운 모습의 젊은 4명의 여성을 담은 사진이었다. 1년뒤 그 중 한명의 졸업식장에서 일년전과 같은 순서로 서있는 네 자매의 사진을 찍은 니콜라스는 “매년 이렇게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승락을 받았다. 그리고 이 의식은 40년동안 이어졌다.

단순해보이지만 대단한 작업이다. 젊은 여인들의 얼굴에 매년 세월이 더해져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두 아름답게 늙어간다.

사진을 찍은 장소도 대부분 보스턴근교의 매사추세츠의 타운들이다. 전형적인 뉴잉글랜더인의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그 장소가 내가 예전에 살았던 매사추세츠 렉싱턴을 중심으로한 타운들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에 더 친근감을 느꼈다.

처음에 독립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도도한 네 자매는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 다가서고 포옹하고 뭉친다. 의상은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찍었다고 한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서 노력한 것 같다.

여러가지 가정사도 있었을테고 일년에 한번씩 네 자매가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이게 가능했다는 것이 놀랍다. 참 대단한 한 가족의 기록이다.

먼 나라의 이방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분들에게도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 소개하자 내 페친사이에서도 공유가 많이 됐다. 그래서 NYT를 가보니 역시 거기서도 가장 많이 이메일로 공유되고 조회수가 높은 기사랭킹 1위를 기록중이다.

그래서 메모삼아 내 블로그에도 적어놓는다. 누군가 멋진 배경음악과 함께 만들어 올린 위 유튜브동영상으로 이 네 자매의 40년간의 모습을 음미해보시길.

Written by estima7

2014년 10월 5일 at 10:05 오후

[기념포스팅] 워드프레스 창업자 맷 뮬렌웨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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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써둔다. 세계적인 블로그플랫폼 워드프레스를 만든 장본인이며 워드프레스플랫폼을 운영하는 오토매틱이란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맷 뮬렌웨그를 5월31일에 만났다. 절친한 후배인 소프트뱅크벤처스 이강준상무가 지인을 통해 그와 연결이 되서 만나게 됐는데 날 끼워준 덕분이다.

바로 얼마전 5월초에 1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로 1억6천만불, 즉 1천6백억원정도의 펀딩을 받은 그는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 인도네시아, 싱가폴, 일본 등을 돌며 워드프레스 미트업을 하러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금요일에 도착해 토요일에 TBS라디오에 출연하고 일요일 오전에 디캠프에서 미트업을 한뒤 바로 싱가폴로 향하는 일정이다.

나는 2008년초부터 테스팅삼아 워드프레스계정을 만들어서 포스팅을 해봤었다. 그리고 미국 라이코스로 간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워드프레스블로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쓴 포스팅이 이 글을 포함해 468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는 블로그플랫폼을 만든 사람을 만난다는 각별한(?) 의미도 있었다.

예전에 미국의 맷을 잘 아는 지인에게 맷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유쾌하고 친절한 훈남이었다. 자산이 몇천억쯤은 될만한 사람인데도 같이 동행한 직원도 없이 혼자서 가볍게 출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워드프레스유저라는 것을 알고 아주 반색을 했다.

우리는 비즈니스와는 상관없이 그냥 한국의 인터넷이야기 등 이런저런 수다를 한시간반정도 나누다 헤어졌다. 그는 다음카카오 합병 뉴스를 보고 카카오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다고 했고 라인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인터넷업계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어서 액티브X 등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지난해에 일년중 280일정도를 출장이나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오토매틱은 모든 직원이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원격으로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십여명이 일하는 본사가 있지만 그도 사무실에 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단다. 전직원은 280명정도인데 세계 180개도시에 산재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는 아직 직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직원을 뽑는 것도 그의 숙제중 하나다.

Update : 맷에게 만남에 대해서 블로그를 썼다고 메일로 알려줬더니 “한국인직원을 뽑는다는 얘기도 썼느냐. 안넣었으면 채용공고링크를 꼭 블로그에 소개해줬으면 좋겠다“고 답장이 왔다.

http://automattic.com/work-with-us/ 영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데 회화보다는 Written english를 잘하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꼭 직원을 뽑았으면 하는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관심있는 분은 용기를 가지고 지원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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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은 명상(Meditation)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Calm이라는 앱이 좋다고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아이폰 첫화면을 찍어서 소개해도 되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일정을 잘 요약해서 보여주는 TripIt이 필수앱이며 자기는 아직도 Path를 열심히 쓴다고 한다. 아직도 포스퀘어로 가는 곳마다 열심히 체크인을 하는 편이며 뉴스앱으로는 Circa를 쓴다. 웨어러블운동트래커는 저본업을 쓰고 있고 메신저는 Telegram을 요즘 애용한다고 한다. Simplenote는 워드프레스가 인수한 회사라고 한다. Blinkist는 책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앱이다. 사내 협업툴로는 Slack을 사용하는 것 같다.

1600억원의 거금을 투자받았지만 당장 그걸로 뭘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한다. 인프라투자와 모바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좋은 회사가 보이면 바로 인수할 수 있는 실탄을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VC로부터의 압력이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보드멤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그런 거금을 투자받으면서 board seat도 주지 않다니…)

맷 뮬렌웨그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이인묵기자가 2년전에 아주 훌륭한 인터뷰기사를 쓴 일이 있다. 궁금한 분들은 그 기사를 한번 읽어보시길. 즐거운 만남에 대한 기록.

[Weekly BIZ] [Interview in Depth] ‘워드프레스’ 창립자 매트 뮬렌웨그

Written by estima7

2014년 6월 1일 at 11:13 오후

“MBA가 이끄는 회사에 다녔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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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살 당시 근교인 플레밍햄을 지나다가 우연히 Bose본사건물을 본 일이 있다. 고급스피커로 유명한 Bose브랜드에는 익숙해있기에 “아니 저 회사가 여기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Bose는 원래 MIT출신 교수가 창업한 회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교수가 회사의 대부분의 주식을 MIT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보스턴지역에 넘쳐나는 비즈니스감각을 갖춘 백인사업가일 것이라고 여기고 지나갔다.

그런데 어제, 7월12일 그 Amar G Bose교수가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읽어본 NYT의 부고기사가 너무 좋아서 간단히 소개해 본다. 그가 인도계였다는 것을 비롯해 몇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다.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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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한 Amar Bose. 출처 유튜브 동영상.

1929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는 영국지배에 저항하다가 인도에서 옥살이를 하고 미국으로 탈출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일찌기 기계를 다루는데 재능이 있었던 그는 13살때 용돈벌이로 라디오수리를 시작했는데 2차대전당시 어려웠던 집안살림을 돕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Bose를 창업한 계기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클래식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50년대 MIT학생일 당시 샀던 고가의 스테레오시스템의 소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데 실망했다. 그때부터 음향공학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그는 콘서트홀에서 경험하는 소리의 80%가 사실은 벽과 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원리를 응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스테레오스피커를 개발해냈고 64년에 멘토이자 MIT교수인 Y W Lee교수의 권유로 Bose를 창업한다. 이후 68년 그가 만들어낸 Bose 901 Direct/Reflecting 스피커시스템은 25년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Bose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후 Bose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카스테레오시스템 등을 내놓으며 급성장한다.

-Bose Corporation은 비공개회사

2012년 매출이 2조8천억원정도로 추정되며 직원수도 1만명에 육박하는 Bose가 상장기업이 아니라는 것에도 놀랐다. 이것은 Bose박사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R&D를 위해서는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분기 실적을 발표해야하는 공개기업이 되면 월스트리트의 압력에 굴복해 단기실적을 맞추는데 급급하기 쉽다.

“I would have been fired a hundred times at a company run by M.B.A.’s. But I never went into business to make money. I went into business so that I could do interesting things that hadn’t been done before.”-Dr. Bose.

“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돈을 벌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시작한 겁니다.”-Dr. Bose.

-가르침에 대한 열정

그의 연구에 대한 열정 못지 않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그는 56년에 MIT교수가 된 이후 45년간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특히 공학뿐만 아니라 인생이야기까지 곁들인 MIT에서 소문난 명강이었던 것 같다. 동료교수와 학생의 이야기.

“He talked not only about acoustics but about philosophy, personal behavior, what is important in life. He was somebody with extraordinary standards,” Professor Oppenheim said.

“그는 음향학뿐만 아니라 철학, 개인의 자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훌륭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His class gave me the courage to tackle high-risk problems and equipped me with the problem-solving skills I needed to be successful in several careers. Amar Bose taught me how to think.”

“그의 수업은 높은 위험을 가진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여러 커리어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문제해결능력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르 보스는 ‘생각하는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Bose교수는 엔지니어링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관련된 배경을 설명해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유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

2011년 그는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했다. 다만 MIT는 매년 현금배당금을 받을뿐, 이 주식을 양도하거나 회사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Majority stock’이라고 나와있으므로 이 주식에 Voting right이 있다면 회사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인 것 같다. 구체적인 기부금액은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8년 포브스 미국부자랭킹에서 15억불의 자산가치로 321위에 올랐을 정도의 부호였으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MIT기부금액은 조단위 가치일 것이 분명하다.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그는 억만장자였지만 소박하게 살았다. 그가 2011년 한 영국신문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I don’t want a second house, I have one car, and that’s enough. These things don’t give me pleasure, but thinking about great little ideas gives me real pleasure.”

“나는 별장을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차 한대가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것들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지만 훌륭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둘이 있는데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들인 Vanu는 MIT를 공학전공으로 졸업하고 역시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Vanu Inc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참 멋진 인생, 멋진 부고기사다. 위 내용은 대충 요약한 것이니 원문을 한번 읽어보시길.

Amar G. Bose, Acoustic Engineer and Inventor, Dies at 83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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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tima7

2013년 7월 13일 at 11:42 오후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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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 초였다. 하버드대학에서 생겨난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아이비리그 학교들을 중심으로 급성장 중이라는 것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이야기였고 또 대학생이 아니면 가입할 수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06년 9월, 드디어 페이스북은 이메일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일반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나는 곧바로 페이스북에 가입해 사이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그간의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페이스북은 무엇보다 쉽고 단순한 인터페이스(연결장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SNS인 마이스페이스(MySpace.com)사이트의 산만한 디자인과 넘쳐나는 스팸에 실망한 터라 페이스북의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점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나서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에 알고 지내다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는 기쁨도 누렸다.

미국 언론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를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야후의 인수 제안을 차버린 겁 없는 젊은이로 소개했다. 우리 돈으로 1조 원에 이르는 거액을 보기 좋게 거절한 그의 배짱도 놀라웠지만 겨우 20대 초반의 청년이 1조 원 가치의 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후 2007년 5월, 페이스북 개발자 콘퍼런스 ‘f 8’에서 페이스북을 전 세계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 그래프(social graph)’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저커버그의 발표 동영상을 보고 그 창의적인 개념과 비전에 놀랐다. 분명 그는 대단한 천재이자 비저너리(visionary-혜안가)였다.

나는 당시 스티브 잡스가 처음 선보인 아이폰과 함께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이 앞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고 주위에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페이스북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고 내 페이스북친구 가운데 한국에 사는 사람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9년 3월,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로 부임한 나는 페이스북이 얼마나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실감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시간대가 서로 다른 드넓은 국토에 흩어져 사는 경우가 많은 미국인들에게 페이스북은 그야말로 서로를 연결하고 안부를 전하는 소중한 ‘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미국인 직원에게 “고향에 계신 80대 할머니가 자기와 연락을 하고 싶어 페이스북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하기도 했다. 확실히 페이스북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내 블로그 참고글 : 미국인들에게 있어 페이스북이란(2009년),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페이스북(2010년))

놀랍게도 그즈음부터 한국에서도 페이스북 이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모두에게 잊힌 사람이 될 뻔했던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Twitter를 통해 한국의 친구나 지인들과 예전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인맥을 유지하고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이러는 동안 저커버그라는 인물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 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젊은 청년을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제국의 창업으로 이끌었을까? 세상을 바꾸는 소셜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얼마 후 그런 의문에 해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에 만난 NHN 김상헌 대표에게서 저커버그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2011년 11월,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벤처투자가인 유리 밀너(YuriMilner)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밀너의 생일파티에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인터넷 기업 CEO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는가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풀이 죽어 있던 김 대표 앞에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김 대표는 자신이 한국 최고의 검색엔진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CEO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저커버그가 예상외로 반색을 하며 “네이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궁금한 것이 많은데 내일 우리 회사에 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었던 김 대표가 정중히 거절하자 저커버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음에 오면 꼭 연락해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김 대표는 다른 오만한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달리 의외로 겸손하고 호기심 많은 저커버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우리 모두가 저커버그를 과소평가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에 창업한 회사를 10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커버그는 어린 나이에 전례 없는 최강 기업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이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커버그의 나이와 경험 부족 너머에 있는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다.

인텔의 소셜마케팅 전문가인 예카테리나 월터(Ekaterina Walter)가 쓴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 Think Like Zuck 》 는 저커버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저자는 저커버그가 어떻게 해서 지난 10년 동안 10억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사이버 제국을 세울 수 있었는지 열정, 사명, 사람, 제품, 파트너십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을 들어 설명한다. 저커버그의 신념과 경영 원칙을 비롯해, 그의 성장 과정과 페이스북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에 대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저커버그의 창업가정신, 혁신적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강력한 실행력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자세히 다루고 있어 저커버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재포스, 컬리지유머, 엑스플레인 등 다른 혁신적인 회사들의 사례를 소개한 점 또한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요소다.

저커버그가 제대로 된 기업문화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페이스북의 기업공개 투자설명서에 쓴 ‘페이스북의 존재 이유’ 라는 그의 서신을 읽어보면 그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개발자 출신답게 그가 제시한 ‘해커웨이(the Hacker Way’) 는 최고의 개발자 집단인 페이스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해커웨이는 개발자의 힘으로 뭔가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끈질기게 매달려 일을 완성시키는 페이스북의 접근방식이다.

'The hacker way'를 표방하는 페이스북답게 멘로파크의 페이스북본사에는 거대한 'HACK' 문자가 그려져 있다. (구글맵에서)

‘The hacker way’를 표방하는 페이스북답게 멘로파크의 페이스북본사에는 거대한 ‘HACK’ 문자가 그려져 있다. (구글맵에서)

저자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단시간 내에 페이스북을 구글, 애플, 아마존닷컴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4대 IT 기업으로 부상시킨 저커버그의 성공 방정식을 통찰력 넘치는 필치로 소개한다.

창업을 꿈꾸는 예비창업자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는 이 책은 이미 창업을 해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는 신생기업가들에게 기업을 키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일깨워줄 것이다. 그리고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영자들에게는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문화를가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좋은 힌트를 준다. 경영자로서 마크 저커버그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임정욱

저커버그처럼 생각하라. 예카테리나 월터 지음|황숙혜 옮김|청림출판|320쪽|1만5000원 -다음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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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아이패드혁명‘, ‘인사이드애플‘로 인연을 맺은 청림출판의 송상미팀장의 부탁으로 감수하게 된 책. 평소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좋은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수를 수락했다. 바쁜 와중에 짬짬이 틈을 내서 감수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2012년 5월의 IPO이후 공모가 38불에 휠씬 못미치는 25불정도의 주가(7월1일현재)를 보이고 있어 페이스북이 고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쉽게 주저앉을 회사라고 보지 않는다.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아직 젊고 큰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것 같고 프로덕트를 최우선시하며 쉐릴 샌드버그 같은 인재를 포용해 일을 맡길줄 아는 경영자로서의 그릇이 있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가 아직은 큰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IPO이후 부진은 어느 정도 작은 역경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 정도의 고난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실패의 경험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6월 30일 at 8:31 오후

17세 벤처신화의 주인공, 섬리의 닉 델로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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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영국소년이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13년 3월25일 야후는 영국의 고등학생 닉 댈로이시오가 개발한 섬리(Summly)라는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인수금액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테크블로그매체인 올씽스디지털은 인수가가 3천만불, 즉 한화로 3백3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상당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17세의 고교생은 적어도 1백억원이상의 돈방석위에 올라앉게 된다.

댈로이시오가 만든 앱은 ‘섬리’다. 다양한 소스의 뉴스를 스마트폰에서 보기 쉽게 400자 이내로 자동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모바일앱이다. 지난해 11월에 아이폰용으로 발표되어 지금까지 1백만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당시에도 16세 소년이 발표한 앱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이 앱은 단순히 뉴스기사의 앞부분만 잘라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통해서 중요한 내용을 순식간에 요약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즉시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해 봤었는데 사용하기 편리한 깔끔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매출도 전혀없는 이런 앱을 야후가 3백억이 넘는 거액에 인수한 것에 좀 놀랐다.

아마도 사상 최연소 벤처대박신화를 이룬 인물로 기록될 댈로이시오를 사람들은 그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길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댈로이시오의 성공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모바일앱을 만들어 발표한지 벌써 6년째가 됐고 그동안 인정받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한 나름 중견(?)창업가이기 때문이다.

신화탄생의 계기는 아이폰과 연관이 있다. 2008년 댈로이시오가 12살때 그는 애플키노트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외부개발자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폰앱을 개발해 앱스토어를 통해 발표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날 그는 바로 애플스토어에 가서 “아이폰앱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나요”하고 물어봤다. 컴퓨터언어 C를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멍청이도 할 수 있는 C’라는 컴퓨터언어입문서를 사서 바로 공부를 시작,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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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번째 아이폰앱인 ‘페이스무드’는 페이스북친구의 글을 분석해서 아이콘으로 친구들의 기분을 보여주는 아이디어앱이었다. 16살이상이어야 앱을 등록할 수 있는 앱스토어의 규정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첫번째 앱을 등록했다.

그뒤 그는 텍스트분석기술을 더 발전시켜 섬리의 원형이 되는 ‘트리밋’(Trimit)이라는 앱을 15살때 발표했다. 그는 당시 기즈모도라는 테크매체에 이 앱에 대한 기사를 실어달라고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기자를 질리게 했다. 그가 겨우 15세 소년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기자는 결국 그를 인정하고 기사를 실어주었다. (참고 내가 어떻게 15살짜리 앱개발자를 울렸나-기즈모도) 그런 편집광적인 열정과 노력 덕분인지 이 앱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언론보도를 본 홍콩의 거부, 리카싱의 투자팀이 그에게 메일을 보내 20만불의 초기투자로 이어지게 됐다. 그는 이 투자로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을 임대해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CEO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Summly는 대략 이런 분위기로 400자내로 뉴스를 요약해줌.

Summly는 대략 이런 분위기로 400자내로 뉴스를 요약해줌.

이후 애쉬톤 커쳐, 오노 요코, 스티븐 프라이 등 유명인들이 줄줄이 그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속에서 그는 트리밋을 발전시킨 섬리를 지난해 11월에 발표하고 불과 4개월만에 회사를 야후에 매각하게 된 것이다.(위 홍보동영상 참고)

댈로이시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도 1년반이 남았다. 그는 그 기간동안 야후의 런던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할 예정이다. 야후는 이 매력적인 컴퓨터천재 미소년을 회사를 상징하는 얼굴역할인 대변인으로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의 CEO 마리사 메이어는 아무래도 섬리라는 앱보다는 댈로이시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껴서 거액을 투자한 듯 싶다.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추가 생각1 : 야후는 이 인수발표와 함께 Summly를 앱스토어에서 제거해 버렸다. 덕분에 정작 이 인수보도를 쓴 많은 기자들은 실제로 Summly를 써보지 못한 듯 싶다. 나는 지난해말에 이 앱이 나오자마자 한번 설치해본 덕분에 다시 써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3백억이나 주고 살만한 앱이고 기술인지는 솔직히 의아하다. 사실 고도의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뉴스기사는 리드 부분을 옮기기만 해도 요점을 전달하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섬리의 UI는 깔끔하고 멋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도 한번 써보고 나서 이 뉴스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완전히 이 앱에 대해서 잊어버린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듯 싶다. (요즘은 사실 좋은 뉴스앱이 너무 많다.) 완전 자체기술도 아니고 (SRI의 기술을 라이센스), 수백만명의 고정사용자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지른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워낙 어리고 말 잘하고 잘 생긴 댈로이시오의 상품가치(?) 덕분에 야후는 충분한 홍보효과를 누린 듯 싶다. NBC뉴스 등 프라임타임뉴스에서 이 소식을 중요하게 다뤘으며 댈로이시오는 모닝쇼의 인기게스트가 됐다. 야후가 유망한 모바일스타트업을 열심히 인수하고 있다는 훌륭한 홍보소재가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통찰력이 넘치며 오리지널한 혼이 깃든 기사를 정성들여 쓰고 있는 언론종사자들에게는 좀 힘이 빠지는 뉴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글이 많은 뉴스매체라고 해도 누가 선뜻 몇백억이 아니라 몇억도 투자하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댈로이시오의 섬리에 루퍼트 머독이 투자했다…)

추가 생각2: 애플의 키노트발표에 자극받은 영국소년이 앱을 만들었다. 이 소년은 자신의 앱을 미국의 테크블로그매체에 직접 접촉해서 홍보했다. 이것을 본 홍콩의 거부가 이메일로 연락해서 첫 투자로 이어졌다. 영국, 미국의 유명인들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이 소년은 그들의 도움으로 새 앱을 발표해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의 야후가 이 영국소년의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서 꼭 실리콘밸리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8일 at 5:23 오후

RIP 로저 이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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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오늘 2013년 4월4일 세상을 떴다. 향년 70세.

2010년 2월의 에스콰이어지 커버스토리. 로저 이버트의 건강하던 옛날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은 큰 충격을 줬다.

2010년 2월의 에스콰이어지 커버스토리. 로저 이버트의 건강하던 옛날 모습을 기억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은 큰 충격을 줬다.

내가 에스콰이어지의 The Essential Man이란 기사를 읽고 “목소리를 읽어버린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 이야기“라고 블로그에 썼던 것이 약 3년전이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말을 하는 재담꾼이었던 그가 암으로 아래턱을 잃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목소리도 잃게 됐지만 절망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글을 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감동적이었다.

“When I am writing, my problems become invisible, and I am the same person I always was,”

“내가 글에 몰입할 때면, 나의 장애는 사라지고, 나는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에스콰이어지에 했던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1년 TED에 나와서 자신이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목소리를 되찾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출처:로저이버트저널

출처:로저이버트저널

불과 그저께 로저 이버트는 “Leave of presense”라는 마지막 블로그포스팅을 통해 “암이 재발해서 방사선치료를 받느라고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볼 수가 없다”며 “할 수 없이 일의 양을 줄이겠다”고 썼었다.

그는 그리고 자신이 평소 매년 2백개가량의 영화리뷰를 쓰는데 작년에는 306개로 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병마와 싸우면서 좀 영화평을 줄이고 암투병과 관련된 글을 좀 써볼까 한다고 블로그에 밝혔었다. 그런데 불과 이틀만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나는 트위터로 그를 팔로우하고 그의 열정적인 트윗도 항상 봐왔기 때문에 웬지 마음이 찡하다. 소문난 리버럴인 그는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했고 총기규제 등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정열을 불태우는 모습이 웬지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 잡스도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수척한 모습으로 키노트이벤트를 진행하고 애플 제2캠퍼스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 쿠퍼티노시의회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Roger Ebert.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4일 at 4:27 오후

일주일 걸려 쓴 책, 십년 걸려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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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출판으로 책이 뚝딱뚝딱 나오는 시대. 한국 서점에 가서 인기있다는 책들을 들춰보는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차를 보니 참으로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적혀있는 책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책을 너무 쉽게 쓴다고 할까. 유명인의 책이면 내용이 없어도 무조건 팔리는 것인가. 조류에 맞춰 빨리 책을 내야해서 그런 것인가.  심지어 일주일만에 책을 써낸다는 분도 계시다. (직접 보지 않아서 평가하긴 어렵지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쓸 수 있을까 솔직히 믿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절반쯤 읽고 있는 33대 미국대통령 해리 트루만의 전기 “Truman”를 보면 책의 가치, 작가의 자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Screen Shot 2013-02-28 at 2.38.25 PM

총 1120페이지짜리 대작. 이 지루할 것 같은 전기가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고졸출신 미주리 시골촌놈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되서 일본에 원자탄을 투여하는 결정을 내리고, 2차대전을 수습하고, 마샬플랜으로 유럽을 지원하고 한국전까지 이끄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 덕분에 트루만의 재평가가 이뤄졌다는 말이 수긍이 간다.

세계최강국인 미국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끈 한 인간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고뇌, 리더쉽의 중요성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나의 인생과 비교하면서 용기까지 얻고 있다.

데이빗 맥컬로

데이빗 맥컬로

어떻게 하면 이런 엄청난 책을 써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데이빗 맥컬로라는 79세의 역사학자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의 글솜씨도 탁월하지만 한 인간의 인생을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자세히 묘사해냈다는데 감탄해서 (트루만을 읽고 있는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맥컬로라는 작가에 대해서 위키피디아 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더더욱 이 작가에 매료되어 버렸다. 다음은 그가 ‘Truman’을 어떻게 썼는가에 대해 소개한 NYT기사의 일부다. 책을 출간할 당시 그는 58세였다.

  • 맥컬로는 친척과 경호원을 포함해 생전의 트루만을 아는 사람을 수백명을 인터뷰했다. 트루만이 생전에 쓴 편지와 관련된 사람들의 문서를 끝도 없이 읽었다. 그리고 트루만에 대해서 쓰여진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 트루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맥컬로는 트루만 생전의 습관을 그대로 흉내내고 재현해보고자 했다. 예를 들어 트루만처럼 아침산책을 했고 트루만의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잠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루즈벨트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했을 때 트루만이 달려갔다는 미국 의회에서 백악관으로 길을 그대로 따라서 답사하기도 했다. 당시 트루만이 놓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공부한 다음 자신을 그 환경에 두고 트루만의 심리상태를 이해해보고자 한 것이다.
  • 책을 쓰면서 맥컬로는 모든 페이지 초고를 부인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인이 그 페이지들을 자신에게 다시 읽도록 해 들어보았다. 이렇게 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볼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용의 쓸데없는 반복이라든지 어색한 문장 같은 것 말이죠. 화가들은 자주 자신의 작품을 거울에 비춰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캔버스에서 바로 봤을때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기도 하니까요.”
  • 맥컬로는 이 책을 10년간에 걸쳐서 썼다. 그 10년동안 그의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가장 어린 딸이 소녀에서 여인이 됐고, 그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그의 가족이 두번 이사를 갔으며 애들을 대학에 보내고 주택장기융자를 다 갚았다. 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이렇게 공을 들여 써서 92년 출판된 “Truman”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7년 걸려서 집필해 2001년 출간한 미국의 2대대통령에 대한 전기 “John Adams”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논픽션책중 하나이며 역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 다음에 2005년에 출간된 맥컬로의 다음 작품 “1776″은 그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초판만 1백25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내가 데이빗 맥컬로의 책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히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그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다. 아랫 부분인데 특히 이 대목이 웬지 눈에 들어왔다. 노작가의 겸손.

두번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수많은 작품을 출간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그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79세인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스토리텔러다.

Americans now hear their history in David McCullough’s clarion voice, the one that narrated the acclaimed Civil War and American Experience documentary series. Still, the two-time Pulitzer Prize winner and author of popular and praised histories of Harry Truman, John Adams, and Theodore Roosevelt, among others, doesn’t consider himself an expert on anything. (“If you think you are, you’ll get yourself in trouble.”) He is a storyteller first, who, at 79, is celebrating the success of his most recent book, The Greater Journey, about Americans in Paris, and who says he is “fired up” to start his next book.

이런 훌륭한 작가가 넘쳐나는 미국의 출판계가 부럽고 또 이런 좋은 책을 열렬히 사주는 두꺼운 독자층이 있는 것도 부럽다. 문득 든 생각.

Written by estima7

2013년 2월 28일 at 4: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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