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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폰, 애플페이, 애플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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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중에 너무 바빠서 애플의 아이폰 발표 뉴스를 챙겨볼 기회가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좀 뒷북이지만 애플의 2시간짜리 키노트발표를 ‘영화보듯’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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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큰 아이폰, 애플페이, 애플와치 3가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아이폰의 경우는 화면이 커진 것 이외에 두드러진 개선은 카메라성능향상인 것 같다고 느꼈다. 슬로모션촬영이나 동영상 흔들림 보정기능이 인상적이었다. 32기가 용량이 어정쩡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32기가가 없어지고 64, 128기가 용량으로 늘어난 것도 괜찮다. 어느 사이즈를 사야하나 가지고 말이 많던데 나는 아무래도 아이폰6플러스로 업그레이드하고 아이패드미니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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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페이는 큰 성공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NFC를 지문을 인식해 체크인하는 ‘터치ID’기능과 결합시켜 결제를 진행한다는 점이 포인트다. 결제도 쉽고 폰을 잃어버려도 다른 사람이 쓸수 없기 때문에 안심감이 있다. 아이폰5s를 쓰면서 터치ID가  가장 편리한 기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과 결제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애플페이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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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페이를 지원하는 단말기가 얼마나 빨리 보급되느냐가 문제인데 미국에 살때 내가 자주가던 월그린(약국소매점), 맥도날드, 파네라브레드 등에 먼저 애플페이가 설치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예전에 월그린이나 CVS에서 NFC를 지원하는 구글월렛단말기가 있다가 사람들이 안써서 사라진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아이폰6는 워낙 급속하게 빨리 보급될 것이기 때문에 애플페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금새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미국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아마 매일 쓰게 됐을 것 같다.

미리 저장된 카드정보를 지문인식을 통해 결제하는 방식인데 안전도가 높아보여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도 낮아지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대형은행들, 특히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회사들이 처음부터 참여했다는 점도 청신호다. 어떻게 이렇게 대형은행과 신용카드사, 월그린, 맥도날드 등을 한번에 참여하게 만들었는지 애플의 협상력에 감탄했다. 애플페이를 통하면 100불이 결제될때마다 15센트가 애플에게 떨어진다고 하던데 애플에게 새로운 큰 매출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한 규제 때문에 당분간은 애플페이기능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문제가 풀려야 또 애플페이 단말기가 보급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항상 그렇듯이 애플페이는 미국시장에 최적화된 결제서비스이고 한국에서는 그림의 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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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와치는 얼핏 사진으로만 보기에 평범해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발표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니 바로 갖고 싶어졌다. UI와 사용성에 대해 정말 깊은 고민을 해서 만들어낸 것 같다. 시계다이얼로 줌인, 줌아웃을 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고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량까지 정밀하게 잡아내는 운동트래커와 맥박도 측정하는 건강트래커기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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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디자인과 재질의 시계줄을 통해서 명품느낌을 갖게 만든 것도 훌륭한 전략인 것 같다. 앞으로 애플와치가 나오면 수많은 기발한 써드파티앱과 다양한 시계줄 악세사리가 이 제품에 다양성을 더해줄 것이다.

나는 손목에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싫어서 (시계가 달린)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20년동안 손목시계를 차지 않았다. 이런 습관을 조금 바꾸게 된 것은 매일매일의 내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핏빗플렉스였다. 매일 1만보이상을 걷기 위해서 나는 지난 1년간 핏빗플렉스를 잘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왼쪽 손목에 차고 다녔다. 내 왼쪽 손목을 과연 애플와치가 점령하게 될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애플와치가 기대보다 별로라는 말도 있는데 그래도 애플와치도 실패하면 웨어러블디바이스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이 정도 완성도와 UI를 가지고도 안된다면 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애플의 발표를 보고 올 4분기에는 삼성의 스마트폰실적에 정말 큰 타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빠르게 변화하는 모바일결제시장에서 각종 규제로 막혀있는 한국의 갈라파고스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이번 애플의 발표는 스티브 잡스 사후 만 3년이 되는 시점에서 애플이 건재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한 이벤트가 아닐까 싶다. 애플은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다른 인터넷공룡들과는 상이하게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혁신엔진을 멈추지 않는 참 신기하고 대단한 회사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9월 14일 at 8:40 오후

모바일앱과 핏빗 덕분에 바뀐 내 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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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OT) 덕분에 내 생활습관이 바뀌었다. 하루종일 뚫어지게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예전보다 부지런히 걷고 움직이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함께 인터넷에 연결된 각종 기기로 자신의 생활을 ‘측정’하게 되면 생활습관이 더욱 바람직하게 바뀌고 관련 산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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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5년간 미국생활을 하다가 2달전 귀국했다. 2009년초 내가 미국에 갈 당시 한국은 스마트폰 상륙이전이었다. (아이폰은 2009년말에 처음 KT가 도입했다.) 약 5년후인 지금은 한국은 스마트폰보급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가 되어 있었다. 어쨌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에서 쓸 스마트폰(아이폰5s)을 구매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비교해서 한국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느꼈다.

미국과 비교하면 휠씬 안정적이고 빠른 한국의 모바일인터넷망

첫번째는 눈에 띄게 빠르고 안정적인 한국의 광대역(LTE)모바일 인터넷망이다. 미국에서도 LTE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음영지역이 워낙 많아 골목안이나 빌딩안에서는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하나 지하철내에서는 휴대폰이 아예 안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물론 예전부터 휴대폰은 잘 터졌지만) 한국에서는 지하는 물론이고 운행하는 지하철내에서도 빵빵한 속도로 인터넷이용이 가능했다. 또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추가요금없이 테더링해서 아이패드나 랩탑컴퓨터에 공유연결해 인터넷을 쓰는 것도 자유롭다. (내가 휴대폰을 가입해 쓰던 미국AT&T는 데이터 테더링을 위해서는 월 20불의 추가요금을 내야만 했다.)

다음지도앱, 구글맵앱, 네이버지도앱.

다음지도앱, 구글맵앱, 네이버지도앱.

훌륭한 모바일 지도앱 3종세트

두번째로 인상적인 것은 지도앱의 대중교통정보다. 대개 구글맵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는 네이버지도, 다음지도라는 훌륭한 지도앱이 있다. 그리고 실시간 대중교통 정보가 제공된다. 목적지까지 다양한 루트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버스의 GPS정보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버스의 운행상황까지 제공해준다. 해외에서는 보기 어려운 편리한 기능이다. 이런 앱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무척 수월해졌다. 어떤 특정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가고자 하는 장소를 검색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선택하면 버스나 지하철로 가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준다. 버스번호나 노선을 외우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어디를 가나 쉽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이나 타블렛을 통해서 밀린 서류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시간을 휠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걷기 동기부여에 큰 효과가 있는 핏빗

Fitbit Flex

Fitbit Flex

그리고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동기부여 요소가 있다. 바로 손목에 차고 다니는 운동량측정기 핏빗(Fitbit)이다. 이것은 일종의 스마트한 디지털만보계라고 할 수 있다. 매일 1만보를 채우는 것이 목표인데 자가용을 타고 다녀서는 절대 이 목표를 채우기 어렵다. 되도록이면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열심히 움직여야 하루에 몇천보라도 더 걸을 수가 있다.

핏빗앱 화면. 핏빗으로 연결된 친구들끼리 경쟁을 유도한다.

핏빗앱 화면. 핏빗으로 연결된 친구들끼리 경쟁을 유도한다.

게다가 내 핏빗앱에는 40여명의 친구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매일처럼 랭킹으로 걸음수를 비교한다.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걸음이라도 더 걷게 된다. 시간이 나면 러닝머신에서 좀 운동을 해서 4천~5천보를 더해놓을 정도다. 그 결과 한국에 온 뒤 첫 2달동안 (부모님의 차를 빌릴 수 있는데도) 한번도 운전대를 잡은 일이 없다. 한두 정류장 정도 예전같으면 택시를 타고 다녔을 거리를 이제는 항상 걸어다닌다. 교통체증속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이동하면서 밀린 이메일을 읽고 간단히 답장도 하면서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한다. Screen Shot 2014-01-07 at 7.41.04 AM 마침 흥미롭게도 1월7일자 조선일보에 “배불뚝이 직장인 47명, 12週 걷기… 허리 9㎝ 줄어 업무효율 크게 향상”라는 기사가 실렸다. “체중을 엄청나게 줄였다”는 부분을 빼고는 지하철을 타면서 하루에 2만보를 걷고 모바일앱을 이용해 신체활동을 측정해가며 동기부여를 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김씨가 이렇게 열심히 걷게 된 데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조비룡 교수팀과 SK 자회사 헬스커넥트가 공동 개발한 IT와 스마트폰 앱(APP)을 이용한 프로그램 덕이다. 조 교수팀은 참가자들에게 걸음 수를 측정하는 신체 활동 추적기를 시계 또는 목걸이 형태로 차게 했다. 이는 일종의 전자 만보계로, 온종일 걸어 움직인 횟수가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기록된다. 체중과 먹는 양에 따라 신체 움직임 목표치가 설정돼 매일 자신의 수행 실적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체중을 줄이는 것에는 완전 실패하고 있다. 한국에 온 이후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게다가 매일 술을 조금씩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루 평균 1만4천보정도를 걷는 덕분에 급격한 체중증가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자동차의 소유 필요성이 반감되고 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제는 아예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성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됐다. 꼭 필요할 때만 빌려서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자동차가 내게 주는 효용가치보다 스마트폰이 내게 주는 효용가치가 더 높은 듯 싶고 덤으로 운동까지 더 하게 되서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유럽에서 자동차판매량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스마트폰에 있다는 얘기가 있다. (참고 포스팅: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고객을 빼앗기는 자동차업계)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굳이 자동차를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내 요즘 경험을 통해 그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1월 7일 at 10:16 오후

경영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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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의 잡스 아이폰발표 키노트 동영상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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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탄생비화를 전한 ‘스티브께서 가라사대, “아이폰이 있으라”‘(NYT기사를 카소봉님 번역)를 읽고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있었던 잡스의 아이폰 첫 발표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다시 봤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년전에 봤던 잡스의 아이폰 발표키노트 프리젠테이션은 내 기억에 거의 완벽했다. 그런데 위 글에 따르면 리허설 마지막날까지도 아이폰과 그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오작동을 반복하는 버그투성이의 기계였다. 위 글을 읽고 위 동영상을 다시 보니 정말 감탄이 나온다. 12분지점에서 잡스가 직접 조니 아이브와 필 쉴러에게 아이폰으로 전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때는 얼마나 스탭들이 조마조마했을까. 기사 내용에 따르면 아무 문제없이 발표가 끝난 것이 거의 기적 같다.

아래는 키노트발표 관련 주요 부분의 발췌.(카소봉님의 번역에서)

그리뇬은 아이폰 리허설 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잡스가 9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실수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잡스는 5일 내내 기조연설을 연습했고, 심지어 리허설 마지막 날에 아이폰은 여전히 통화가 잘 안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고, 얼어서 꺼야 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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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을 100번 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뭔가 문제가 생겼죠.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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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은 노래나 영상의 일부를 재생할 수 있었으나, 전체 클립을 안정적으로 재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메일을 보낸 후의 웹서핑 정도는 괜찮았지만, 그 반대 순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시도와 실수 끝에 엔지니어들이 일컫는 “골든 패스(golden path)”가 만들어졌다. 특정 방식으로 특정 순서에 따라 아이폰을 움직여서 마치 아이폰에 버그가 없는 양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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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와이파이 라디오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불안정해서 그리뇬과 그의 팀은 아이폰의 안테나를 무대 뒤의 전선에 연결 시킬 정도로 확대했다. 무선 신호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해당 주파수에 대한 접근은 금지됐다. 그의 말이다. “심지어 베이스스테이션 ID을 숨긴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니까 노트북의 무선 신호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조연설 청중 5천명이 다 컴퓨터 광들입니다. 어떻게 신호를 해킹할 방법을 알아내겠죠.” 그래서 그는 에어포트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운영하는 것인 양 만들었다. 미국에서 허용 안되는 주파수를 일본 와이파이가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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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무대 위에서 할 전화 송신이 잘 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뇬과 그의 팀은 좋은 신호가 잡히기만을 기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이폰용 통신사인 AT&T가 휴대용 통신탑을 가져왔기 때문에 신호 자체는 강력할 터였다. 잡스의 결재에 따라 그들은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다섯 개의 막대가 실제 강도와는 관계 없이 언제나 다 채워지도록 했다. 90분의 기조연설 중 잡스가 전화기를 사용하는 동안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느 때라도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의심대로 만약 라디오가 충돌돼서 재시작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 막대바를 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하드코딩을 하여 항상 다섯 개 막대가 보이도록 해 놓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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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9일, 잡스가 아이폰을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꿈꿔 왔던 날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비자들이 어째서 자기 휴대폰을 싫어하는지 잔뜩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모든 문제를, 분명히 풀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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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아이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고 아이폰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을 때, 그리뇬과 다른 이들은 청중 속에서 초조해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발명해낸 주소록과 보이스메일을 보여 주며 전화를 걸었고, 문자와 이메일을 보냈으며,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얼마나 타자 치기에 쉬운지도 보여줬다. 그는 여러 사진을 스크롤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크게, 작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고,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웹사이트를 보여 주면서 아이폰용 인터넷 브라우저가 자기 컴퓨터의 브라우저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구글 지도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무대 위에서 스타벅스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폰이 없으면 왜 안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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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되자 그리뇬은 안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는 취했다. 스카치 한 병을 사서 자신의 초조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다. “엔지니어, 관리자 등 우리 모두는 다섯 번째 열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연이 끝날 때마다 스카치 한 잔씩 했죠. 대 여섯 명 쯤 있었을 겁니다. 시연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해당 기능 책임자가 원샷 했어요. 마지막이 되자 우리는 스카치를 다 비웠습니다. 모두가 잘 흘러갔고, 정말 우리가 봐 온 시연 중 최고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전체 아이폰 팀에게는 [욕설 삭제] 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도시에서 하루 내내 마시며 보냈어요. 엉망진창이었지만, 정말 근사했습니다.”

짧게 편집된 위 동영상에 나오지 않은 잡스가 스타벅스에 4천개의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부분이 아래 동영상이다. 장난전화를 건 장본인이 스티브 잡스인지도 몰랐던 이 스타벅스 직원은 이후에 “4천개의 라테 주문” 장난전화에 꽤 시달렸다고 한다.

2007년 당시에 정말 마술같은 발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봐도 대단하다.

다시한번 RIP. 스티브 잡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0월 6일 at 10:35 오후

스티브 잡스 서거 2주기에 읽는 아이폰 탄생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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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얼마전에 썼던 블랙베리에 대한 글에서 블랙베리창업자 라자리디스가 처음 아이폰을 접했을 때 느낀 충격에 대한 부분이 있다.

2007년초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면서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애플 아이폰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폰에 대해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아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그는 아이폰을 분해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애플이 맥컴퓨터를 휴대폰안에 구겨넣은 것 같잖아(It was like Apple had stuffed a Mac computer into a cellphone)”라고 그는 생각했다.

고교때부터 직접 오실로스코프와 컴퓨터를 만들었던 라자리디스에게 있어서 아이폰은 모든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물건이었다. OS만 메모리에서 7백메가를 차지했고 프로세서가 2개 들어있었다. 반면 블랙베리는 프로세서 한개 위에서 돌아가며 겨우 32메가만 차지했다. 블랙베리와는 달리 아이폰은 인터넷이 제대로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폰이 AT&T 같은 이통사의 망을 교통체증상태로 빠뜨릴 것이란 얘기였다. 그런 일은 이통사가 허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반면 RIM(블랙베리)은 데이터사용량을 제한하는 원시적인 수준의 브라우저를 제공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AT&T가 이것을 허용하게 한 것이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것은 네트웍을 다운시킬텐데..”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글로브앤메일에서 발췌. 참고 포스팅 : 블랙베리의 몰락-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를 읽고

당시 스마트폰시장의 톱에 있던 블랙베리의 창업자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라면 엄청난 혁신이다. 도대체 그 당시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윗 글을 읽으면서 했다. 저 당시의 혁신에 비하면 지금 아이폰5s, 5c의 혁신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맞다.

NYT의 "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 기사는 일요판 NYT와 같이 배달되는 NYT매거진에 실렸다. 사진은 천지창조에 빗대 아이폰의 탄생을 그린 이 기사의 삽화.

NYT의 “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 기사는 일요판 NYT와 같이 배달되는 NYT매거진에 실렸다. 사진은 천지창조에 빗대 아이폰의 탄생을 그린 이 기사의 삽화.

마침 스티브 잡스 2주기를 맞아 NYT는 “스티브께서 가라사대, “아이폰이 있으라”“(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카사봉님이 이 긴 기사를 세심하게 번역해주셨다. 필독)라는 장문의 아이폰탄생비화를 게재했다. 이 글을 읽어보면 블랙베리 창업자가 어떻게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 납득이 될 정도로 아이폰개발이 대단히 어려운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에서 읽은 몇군데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한다. (카사봉님의 번역에서 그대로 인용)

2007년 1월 아이폰을 선보이기로 한 결정은 분명 도박이었다. 잡스는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애플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그 휴대폰은 잘 작동하지도 않는 프로토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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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정도로, 잡스는 이미 전화기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설득을 받아 왔었다. 전화기는 잡스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 주제 중 하나였고, 애플이 아이포드를 만들었던 2001년부터 계속 제기돼 왔었다. 개념은 분명했다. 소비자들이 이메일과 사진, 음악용 기기로 하나를 원하지 두 세 개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잡스와 그의 경영팀이 그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알아볼 때마다 전화기 제조는 자살에 가까웠다. 휴대폰용 칩과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인터넷이나 음악, 영상 다운로드를 휴대폰 통신망으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메일 정도만 전화기에 붙일 만했지만 RIM의 블랙베리가 이미 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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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애플의) 간부와 엔지니어들은 아이포드의 성공으로 한껏 고양돼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 만들기는 조그마한 매킨토시 만들기와 비슷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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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아이폰에 수정된 버전의 오에스텐(모든 맥에 탑재돼 있다)이 들어가기 바랬다. 그렇지만 아무도 오에스텐과 같은 거대한 프로그램을 휴대폰 칩에 올려 놓을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 오에스텐을 거의 1/10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코드 수 백만 줄을 없애거나 다시 작성해야 했으며, 칩이 2006년에나 나왔기에 엔지니어들은 칩 속도와 배터리 수명을 시뮬레이션하여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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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스텐을 줄이고 멀티터치 스크린을 제조하기란 혁신적이기는 해도 어려웠다. 적어도 기업으로서 애플이 당시 갖고 있던 기술로는 말이다. 오에스텐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서 집어 넣어줄 회사는 애플 말고 없었다. 액정이야 모든 노트북과 아이포드에 LCD를 넣으니 LCD 업체들을 애플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휴대폰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그리고 2006년 아이폰 작업을 하고 나서야, 애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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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프로젝트는 너무나 복잡해서 애플 전체에 위협을 가할 때도 종종 있었다. 애플 내 수석 엔지니어들이 아이폰 프로젝트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다른 일의 시한을 늦춰야 할 때가 발생해서였다. 아이폰이 애플을 다 덜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애플은 당시 대규모적인 제품 발표를 아이폰 외에 갖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폰 프로젝트의 한 수석 간부에 따르면 아이폰이 실패할 경우, 애플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실패 때문에 좌절하여 애플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을 뚫고 애플의 엔지니어들을 지휘해 초인적인 독재자, 스티브 잡스는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발표했다. 과연 이때 아이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어내는데 결국 실패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폰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RIP. 스티브 잡스.

위 기사 내용은 사실 프레드 보겔스타인이란 와이어드 에디터가 곧 11월에 출간할 "Dogfight: How Apple and Google Went to War and Started a Revolution"에서 발췌한 내용인 듯 싶다. 기대되는 책이다.

위 기사 내용은 사실 프레드 보겔스타인이란 와이어드 에디터가 곧 11월에 출간할 “Dogfight: How Apple and Google Went to War and Started a Revolution”에서 발췌한 내용인 듯 싶다. 기대되는 책이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0월 5일 at 11:45 오전

WSJ에 실린 삼성 갤럭시노트3+기어 10페이지 신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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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천문학적인 마케팅비용에는 미국사람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정도. 이제는 삼성이 애플보다 휠씬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오늘 아침에 또 실감했다. 예전에도 한 7~8페이지 전면광고를 웬만한 미국신문에 다 실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는데 오늘도 내가 구독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10페이지짜리 광고를 실었다. 별도 섹션을 끼운 것이 아니고 본 섹션의 내지에 자연스럽게 10페이지의 광고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5년은 미국에서 종이신문을 구독했는데 다른 기업이 삼성처럼 이렇게 광고 폭탄을 내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오늘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도대체 어디까지 광고가 이어지는 것일까하며 놀랐다. 아래는 광고를 찍은 사진. Update : 삼성은 오늘자 NYT에도 똑같이 10페이지짜리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비가 도대체 얼마나 들었을지 궁금.

IMG_1412 IMG_1413 IMG_1414 IMG_1415 IMG_1416 IMG_1417마지막으로 다른 면에 스프린트의 아이폰5c 광고가 실렸길래 참고로 추가.

IMG_1418이것은 스프린트가 돈을 낸 광고일지, 애플과 비용을 공동부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삼성 덕분에 어려운 미국신문사들 형편이 좀 펴지겠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0월 4일 at 8:37 오전

테슬라 모델S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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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S

테슬라 모델S

전기차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테슬라의 모델S.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젠 무척 흔하게 볼 수 있는 차가 됐지만 실제로 타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어제 오랜 친구인 David Lee를 만났다가 한 10여분 그의 차를 조금 얻어타고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다음은 그 경험을 간단히 적은 글. (참고 포스팅: 닛산리프와 테슬라 모델S가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붐)

Ex-Googler인 데이빗 리. 그는 K스타트업프로그램을 이끄는 것으로도 한국에 잘 알려져있다.

Ex-Googler이며 벤처투자자인 데이빗 리. 그는 K스타트업프로그램을 이끄는 것으로도 한국에 잘 알려져있다.

일단 전기차로서 당연한 얘기지만 차가 움직이면서 전혀 엔진 소음이 나지 않았다. 악셀을 밟자 토크가 높은 전기차의 특성대로 조용히 발군의 가속력을 보여줬다. 데이빗은 그동안 포르쉐 등 좋다는 차들은 웬만큼 몰아봤는데 이 테슬라가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도 원래는 테슬라가 망할 회사라고 생각하는등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친구가 산 테슬라를 타보고 생각을 바꾸게 됐고 직접 구입까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Seeing is believing”이라나. 

Screen Shot 2013-10-01 at 7.37.42 AM

3G 인터넷이 느려서 구글맵의 구동이 좀 느린 것이 흠이다. 아래 에일리의 노래제목에 한글이 깨져있는 것도 옥의 티다. 아직은 다국어대응이 안되는 모양.

내가 궁금했던 것중 하나는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의 편이성이었다. 운전하면서 조작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아무리 그래도 에어콘이나 카스테레오 등의 운전중의 조작은 물리적 버튼이나 레버로 조작하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질문에 데이빗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터치스크린에 큼직하게 버튼들이 보이고 반응속도가 빨라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가끔 블루투스가 먹통이 되거나 하면 PC에서 Ctrl-Alt-Del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자동차핸들 양쪽의 휠버튼을 몇초간 눌러서 리셋하면 된다고 시범을 보여준다. 터치스크린이 리로드되는 동안에도 자동차운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테슬라는 자동차 자체가 항상 3G네트웍에 연결된 ‘인터넷차’다. 터치스크린 위에 마치 스마트폰화면처럼 3G신호세기가 표시된다. 3G인터넷사용료는 무료다. 다만 속도가 느려서 좀 불편할때가 있는데 나중에 LTE로 추가비용없이 업그레이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자체는 구글맵이다. 음성으로 검색해서 목적지를 찾는 것이 구글검색 그 자체다. 라디오는 슬래커라디오라는 앱을 통해서 K-Pop을 듣고 있었는데 이것도 (아마 한시적으로) 무료제공이라고 한다. 카오디오의 품질도 대단히 뛰어났다. (차에 소음이 없어서 더 좋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고급차의 경우는 XM시리우스라는 위성라디오에 가입해서 유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위성라디오보다도 확실히 음질이 뛰어났다.

엔진오일 등을 바꾸러 차를 정비하러 갈 필요도 없고 주유소에 전혀 들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라고 한다. 물론 충전소는 자주 가야겠지만 데이빗은 거의 집에서 충전한다고 한다. 그는 팔로알토에 살면서 가까운 사무실로 출퇴근하는데다 출장을 많이 다녀서 실제로는 차를 쓸 일이 많지 않다. 한번 충전에 최대 300마일(400km이상)을 갈 수 있는 그의 테슬라 배터리용량은 그에게는 넘친다. 얼마전 집의 자동차충전전기료가 15불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믿지 못할 얘기를 했다. (Update: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확인했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차를 구입한 이후에 집의 전기료고지서가 매달 15불~20불정도만 더 나온다고 함. 그래서 15불이라고 했다는 얘기.)

그는 한국에서 온 분들을 가끔 자기 차로 모시는 일이 있는데 테슬라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경우 “이게 도대체 무슨 차냐”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It’s iPhone car”라고 대답한다고. 즉, 아이폰같은 차라고 이해하면 쉽다는 것이다.

내가 3년전 또 다른 전기차인 닛산 리프를 처음 타보았을 때는 자동차가 아니라 전기제품이란 느낌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테슬라정도는 아니었다. 차의 한가운데에 파격적인 거대한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테슬라는 정말로 “아이패드+자동차”라는 느낌이 강하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에 있어서도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데이빗도 “이건 Software guy들이 만든 차”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실제로 테슬라에는 디트로이트에서 넘어온 기계공학 엔지니어들과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엔지니어들이 협업해서 일한다. 디트로이트와 실리콘밸리의 만남으로 테슬라가 나온 것이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0월 1일 at 7: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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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의 몰락-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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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전에 썼던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끝을 맺었었다. (1만회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인기포스팅이었다.)

개인적으로 블랙베리가 이런 운명을 맞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짐 발실리, 마이크 라자리디스 두 창업자 겸 CEO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그 향후 파괴력을 이해하고 빨리 대응만 했어도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50%의 마켓쉐어에 도취해서 잘난척하며 오만을 떨고 있는 동안 그들은 기둥뿌리가 썩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뭔가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버스는 한참전에 지나간 뒤였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선장, CEO의 역할이 너무너무 중요한 이유다.

이 두 창업자는 블랙베리의 몰락과 함께 세계 언론과 월스트리트의 비판과 조롱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도 위처럼 그들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적으로 썼던 것이다.

9월28일자 더 글로브앤메일 1면. 왼쪽부터 블랙베리 공동창업자인 짐 발실리와 짐 라자리디스 그리고 현 CEO인 토스텐 하인즈.

9월28일자 더 글로브앤메일 1면. 왼쪽부터 블랙베리 공동창업자인 짐 발실리와 마이크 라자리디스 그리고 현 CEO인 토스텐 하인즈. 발실리는 비즈니스부문, 라자리디스는 제품개발부문을 맡아왔다.

그런데 오늘 캐나다 최대 일간지인 더 글로브앤메일의 심층 취재기사블랙베리몰락의 내막: 스마트폰의 발명자가 어떻게 변화에 대한 적응에 실패했나”(Inside the fall of BlackBerry: How the smartphone inventor failed to adapt)라는 기사를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기사는 20여명의 블랙베리 내부인들을 인터뷰해서 쓰여진 것으로 아이폰의 등장이후 블랙베리의 중역진과 이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주 재미있다.)

두 창업자들이 꼭 오만을 떨면서 아이폰의 위협을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나름대로 대처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까지의 성공을 이뤄낸 블랙베리의 문화와 경영의사구조가 오히려 방해가 됐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블랙베리라는 주로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하며 오래된 소프트웨어플렛홈을 가진 제품이 아이폰이라는 파괴적인 혁신제품의 등장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명의 창업자와 새로운 CEO로 분권화된 내부 의사결정구조가 혼란을 가중시키며 중요한 전략적 판단실수를 여러차례 가져왔다. 공동창업자간에도 의견이 대립했으며, 나중에는 새로운 CEO인 하인스의 반대에 두 공동창업자들은 좌절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같은 통찰력 넘치는 강력한 단일리더의 존재가 아쉬운 부분이다.

기사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몇개 부분을 소개한다.

2007년 초 발표된 아이폰을 처음 접한 라자리디스(제품 개발부분을 담당한 창업자)의 이야기다.

2007년초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면서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애플 아이폰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폰에 대해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아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그는 아이폰을 분해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애플이 맥컴퓨터를 휴대폰안에 구겨넣은 것 같잖아(It was like Apple had stuffed a Mac computer into a cellphone)”라고 그는 생각했다.

고교때부터 직접 오실로스코프와 컴퓨터를 만들었던 라자리디스에게 있어서 아이폰은 모든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물건이었다. OS만 메모리에서 7백메가를 차지했고 프로세서가 2개 들어있었다. 반면 블랙베리는 프로세서 한개 위에서 돌아가며 겨우 32메가만 차지했다. 블랙베리와는 달리 아이폰은 인터넷이 제대로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폰이 AT&T 같은 이통사의 망을 교통체증상태로 빠뜨릴 것이란 얘기였다. 그런 일은 이통사가 허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반면 RIM(블랙베리)은 데이터사용량을 제한하는 원시적인 수준의 브라우저를 제공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AT&T가 이것을 허용하게 한 것이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것은 네트웍을 다운시킬텐데..”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개적으로 라자리디스와 바실리는 아이폰의 부족한 배터리수명, 약한 보안성, 부족한 이메일기능 등을 조롱했다. 덕분에 나중에 그들은 거만하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평을 받았다. 라자리디스는 “그건 마케팅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에 대비해서 우리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내부적으로는 그는 아주 다른 메시지를 전파했다. “만약 아이폰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노키아가 아니라 맥과 경쟁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고 회상했다.

아이폰의 가능성은 일찍 인지했지만 블랙베리를 쉽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자바에 기반한 레거시OS소프트웨어에 기반하며 기업고객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블랙베리와 그에 맞게 형성된 내부 조직문화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는 점이다.

버라이존의 요청으로 만들게 된 블랙베리 스톰.

버라이존의 요청으로 만들게 된 블랙베리 스톰.

그래서 첫번째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이폰이 등장한지 얼마 안돼 아이폰을 독점하고 있었던 AT&T에 대항하기 위해 버라이존은 블랙베리에 터치스크린 아이폰킬러를 만들어줄 것을 의뢰했다. 블랙베리는 ‘스톰’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사용하기 어렵고 복잡한데다 버그가 많아서 반품이 늘어났다. 버라이존은 할 수 없이 구글과 모토로라에 의뢰해 안드로이드폰 ‘드로이드’를 내놓는다. 이때 블랙베리는 큰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할 수 있다. 드로이드를 계기로 안드로이드진영은 급성장하면서 점점 블랙베리의 마켓쉐어를 빼앗아간다.

또 흥미있는 부분은 실패로 돌아간 짐 발실리의 SMS 2.0계획이다.

BBM의 로고.

BBM의 로고

2011년 마케팅부분을 담당한 공동창업자중 한명인 짐 바실리는 블랙베리의 최대강점중 하나인 인스턴트메시징소프트웨어인 BBM을 다른 기기까지 개방하는 것을 구상한다. BBM은 사실 왓츠앱, 카카오톡, 라인 같은 모바일메신저앱의 원형 같은 제품이다. 사용하기 편하고 안정성과 보안성도 높아서 블랙베리의 킬러앱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유료였다. 블랙베리는 당시 분기당 거의 9천억원상당의 매출을 BBM에서 올리고 있었고 마진은 90%에 달했다.

발실리는 인스턴트메시징플렛홈의 미래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것이 모바일시대의 킬러앱이 될 것이며 이 카테고리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사이즈의 회사가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유료였던 BBM을 이통사와 제휴해서 무료로 풀고 수익을 이통사와 나누는 SMS 2.0을 만드는 것을 꿈꿨다. 이통사와의 협상을 통해서 일부 회사의 동의도 얻어냈다.

하지는 2012년초 그는 그 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회사내에서는 그 엄청난 수익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중역이 많았고 또 서비스보다는 하드웨어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새 CEO 하인스와 공동창업자인 라자리디스의 반대에 이 계획은 이사회에서 좌초되어 버렸다. 화가 난 발실리는 이후 모든 직위에서 사임하고 블랙베리를 떠났다. 심지어는 가지고 있던 주식도 다 팔아버렸다. (블랙베리는 2013년 후반인 이제야 BBM을 안드로이드와 iOS버전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모바일메신저시장은 경쟁사들에게 다 선점된 상황이며 지금 내놓은 앱도 불안정한 서비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2년간 왓츠앱, 카카오톡, 라인, 위챗의 눈부신 성장을 고려해보면 당시 그의 생각은 옳았다.

블랙베리 Z10. 제품은 괜찮았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블랙베리 Z10. 제품은 괜찮았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다른 공동 창업자인 라자리디스가 좌절할 차례였다. 지난해 그는 완전한 터치스크린폰인 블랙베리Z10의 개발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블랙베리유저들은 물리적 쿼티 키보드가 달린 기기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최소한 물리적 키보드가 있는 제품을 터치스크린 버전과 같이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새로 CEO가 된 하인스와 그의 중역들은 라자리디스의 말을 듣지 않고 Z10의 개발을 강행했다. 그리고 올초에 발매된 Z10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블랙베리의 기존 사용자들은 아직 물리적 키보드가 있는 신제품을 원했다. 터치스크린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만족하고 있었다. 기존 블랙베리와는 다른 새로운 터치스크린 OS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많은 아기자기한 블랙베리의 장점도 사라졌다. 지난 분기 블랙베리는 Z10 때문에 거의 1조원의 손실을 봤다.

크게 보면 두 창업자의 판단은 옳았다. 하지만 실행과정은 험난했다. 시장상황은 너무나 빨리 변했다. 쌍두마차로 사이좋게 이끌어가던 경영은 위기상황에서 걸림돌이 됐고 결국 새 CEO까지 가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오판을 내리게 됐다.

경영이란게 어렵긴 하지만 IT업계의 변화도 너무 빠르다. 무서울 정도다. 블랙베리의 두 창업자들을 너무 혹독하게 비판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글로브앤메일의 기사 내용을 소개해 봤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9월 28일 at 1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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