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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이름이 없는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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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일이 있다. 신문 부고와 전기에 관한 문화를 보며 한국과 미국 사회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느꼈다.

일반적인 한국신문의 부고란.

일반적인 한국신문의 부고란.

부고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리는 것이나 그러한 글”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부음’, ‘궂긴소식’(<한겨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국 신문 부고란의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른다. “김○○ ××기업 전무 부친상=○○일 ○○시 ○○병원, 발인 ○○일 ○○시 전화번호”의 형식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부고 기사인데 정작 고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한겨레>는 예외적으로 고인 이름을 적는다.) 고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에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그냥 자식들의 이름 다음에 ‘부친상’, ‘장인상’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분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고인의 이름 없이 ‘모친상’ 아니면 ‘장모상’, ‘조모상’으로 나온다. 자식들의 이름만 직업이나 직함과 함께 열거된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듯 지나치던 이런 부고란의 문제점을 알아챈 것은 미국 신문의 부고란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여기서 부고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그 자손들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From NYT obituaries.

From NYT obituaries.

 “로다 레인버그. 82. 루이스의 부인. 리사와 데이비드의 엄마. 벤저민, 리오라, 시라의 할머니. 그녀는 따스하고 온화한 영혼, 낙천적인 성격, 유머, 호기심, 강건함,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부고의 목적이다. 더 긴 부고 글에는 고인의 인생 역정을 간결하게 소개한다. 자손들은 이름만 나올 뿐, 직업이나 직함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고인이다. 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 반스앤노블의 전기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자서전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동네 반스앤노블의 전기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자서전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와서 신기하게 느낀 것이 전기 장르의 인기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전기를 어릴 때나 읽는 위인전 같은 고리타분한 책으로 여겼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기나 자서전은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예술인,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읽히는 인기 장르다. 스티브 잡스 전기처럼 밀리언셀러인 전기가 많다. 서점에 가면 전기만 진열한 큰 서가가 따로 있고 평생 전기만을 쓰는 전업 작가들이 많다. 이런 전기들은 한 인물의 삶을 단순히 미화하기보다는 그 시대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면서 공과 과를 균형있게 서술해 독자가 한 인물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2006년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시카고교외의 한 공공도서관 포스터를 위해 Team of rivals 책을 읽는 모습을 포즈를 취했다.

2006년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시카고교외의 한 공공도서관 포스터를 위해 Team of rivals 책을 읽는 모습을 포즈를 취했다.

왜 이렇게 전기가 인기가 있을까? 전기를 탐독하는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책은 딱딱해서 읽기가 어려운 데 반해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흥미롭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옛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 보는 것은 독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전기를 통해 일종의 멘토를 찾게 되는 것이다. 10여년간 링컨을 연구한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2005년 <권력의 조건>(원제 Team of Rivals)이라는 링컨 전기를 펴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고 200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는 이 책에서 라이벌을 끌어안는 링컨의 리더십에 자극받아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영입했다.

이런 서구의 문화에 비해 우리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의 부고도 마치 문상 올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 *

7월16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집에서 구독하는 NYT의 Obituaries란을 보다가 문득 한국신문의 부고란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는데 (내 기억처럼) 역시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부고란은 망자의 이름이 빠진채로 나와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블로그에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라는 글을 올렸고 이번에 한겨레칼럼으로 다시 써봤다.

사실은 18년전 신문사 사회부 신참기자로 일할때 부고란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팩스로 전달되어 온 부고게재요청을 형식에 맞게 적은 다음 전화번호가 맞는지 직접 걸어서 확인하고 신문에 실었다. “왜 망자의 이름은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문화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되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칼럼을 쓰고 나서 우연히 이 문제를 10년전에 지적했던 “신문 부고란엔 망자가 없다”라는 제목의 미디어오늘 기사(2003년게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부고문화를 풍자한 김승희시인의 ‘한국식 죽음’이란 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출처:꿈마이, 책에 빠지다 블로그

출처:꿈마이, 책에 빠지다 블로그

더불어 이 시가 지적한 내용을 가지고 쓴 블로그글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한국식 죽음」“도 읽어보고 생각해볼 만한 글이다.

죽은 자의 신분은 자식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조문을 가는 사람들은 망자를 애도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돈을 내고, 산 자를 위해 식장에 좀 머물며 국밥을 먹을 뿐이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에 대한 정보로 가득한 부고란은 산 자들을 위해 죽음마저도 이용하려 드는 우리네 일그러진 장례 문화의 단면이다. 부고란은 죽은 자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우리 장례문화에 대한 이런 지적은 정말 뼈아프다. 어쨌든 이런 시, 기사가 나온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또 아쉽기만 하다.

* * *

칼럼의 후반부분에서 이야기한 미국의 전기문화는 올초 트루먼전기를 읽고 받은 감상이다. 유명한 전기작가인 데이빗 맥컬로라는 사람에 관심이 있어서 (해리 트루먼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봤는데 총 1120페이지짜리 긴 책을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다. (참고: 일주일 걸려 쓴 책, 10년 걸려 쓴 책) 그리고 “전기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리고 보니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아인슈타인, 벤자민 프랭클린),  도리스 컨스 굿윈 등 기라성 같은 전기작가들이 많이 있고 정말 수많은 전기가 매달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전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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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뉴욕에 잠깐 출장을 갔는데 엄청나게 더운 날 30대초반쯤 되어 보이는 한 백인여성이 머리에는 얼음주머니를 엊은 채로 집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끌어다 길에 놓고 모두 $1라며 팔고 있다. 내 눈길은 끈 것은 무지 두꺼운 워싱턴 전기였다. 3년전쯤 나온 책이다. 당시 나는 “아니 세상에 워싱턴이면 우리나라의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급의 위인인데 어떻게 또 새로 전기가 나오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전기는 모든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책이다. 본문만 822페이지다. 어쨌든 백만년쯤 뒤에 읽게 되겠지만 책 욕심에 이 책을 집어들고 1달러를 건냈다. 그러자 그 여성이 빙긋 웃으며 “He’s my hero!”라고 한마디한다. 이런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전기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stima7 작성

2013년 7월 19일, 12:34 오전

생각의 단편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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