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Thoughts on Internet

기자중의 기자, 밥 사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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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유난히 미국언론인들을 둘러싼 뉴스가 많았다. NBC뉴스 간판앵커 브라이언 윌리암스의 스캔들과 데일리쇼의 존 스튜어트(그는 코미디언이지만 언론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의 급작스러운 데일리쇼 하차 예고 발표가 뜨거웠다.

그리고 두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미국언론계를 흔들었다. CBS뉴스의 밥 사이먼과 NYT의 데이빗 카다. 밥 사이먼은 교통사고로 데이빗 카는 편집국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가 세상을 떴다.

특히 60미닛을 진행했던 밥 사이먼은 (그의 얼굴은 TV에서 가끔 봐서 익숙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기자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는 어떤 사건을 보도하는데 있어 그만의 시각과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기자였다고 한다. 내가 놀란 것은 CBS뉴스소속으로만 47년간을 활약한 이 73세의 노기자에 대한 소속사를 초월해 쏟아지는 미국언론인들의 추모다.

이것은 CBS뉴스의 추모보도다. 한데 다른 방송사나 신문들도 일제히 그에 대한 기사를 크게 냈다.

밥 사이먼이 어떤 스토리텔링을 했는지 보여주는 60미닛 에피소드 한편을 소개한다. Joy in the Congo. 콩고에서 울려퍼지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다.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멋진 스토리다.

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토리텔러인 스티브 하트먼은 CBS이브닝뉴스에 밥 사이먼을 추모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스티브 하트먼의 On the road 소개 포스팅 링크) 그가 몰래 밥 사이먼의 뉴스보도를 보고 또 보고 외우기까지 할 정도로 따라하면서 스토리텔링에 대해 배웠다는 고백이다. 아마도 이번주에 방영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꼭지가 있었을텐데 위 리포트는 밥 사이먼의 부음을 듣고 급히 만들어서 내보내는 내용인 듯 싶다. 하지만 기자로서 진솔한 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 그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하지만 그가 ‘질투’하고 몰래 따라했던 사람이 밥 사이먼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사이먼은 아주아주 겸손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73세의 나이에도 현장을 뛰며 직접 취재하고 대본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고 나레이션을 입히는 기자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싶다. 3년만 더 했으면 저널리스트로서 50년을 채웠을텐데 그의 죽음이 아쉽다. 60미닛의 PD가 된 친 딸과 작업한 마지막 60미닛 에피소드가 오늘 방영된다고 한다.

어쨌든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때 이처럼 그의 일생을 기리며 추모하는 ‘Remembering’의 문화가 나는 아주 부럽다. 우리도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때 자녀들 이름과 빈소위치만 적은 부고글만 내지 말고 고인의 일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을 다같이 써보면 어떨까. 그것이 진정한 추모일 것 같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15일 at 10:08 오전

스타 앵커 브라이언 윌리암스의 갑작스러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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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BC뉴스.

출처 ABC뉴스

내가 2009년 2월 미국으로 간 뒤부터 지금까지 만 6년간 거의 매일처럼 (팟캐스트를 통해) NBC나이틀리뉴스에서 얼굴을 대하던 브라이언 월리암스가 갑자기 앵커직에서 하차했다. 12년전 이라크전에서 과장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6개월동안 무급 정직처분을 당한 것이다. 그의 연봉은 1천만불(110억원)로 알려져 있다. 6개월동안 연봉 55억원도 함께 못받게 될 듯 싶다.

브라이언 윌리암스가 누구인가. 미국방송계를 대표하는 1등뉴스앵커다. 9백30만명이 매일 그가 진행하는 저녁뉴스를 본다. NBC뉴스가 1등 시청율을 올리는 이유가 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정된 뉴스진행, 묵직한 목소리, 신뢰감을 주는 얼굴, 적당한 유머감각 등 지난 6년간 그의 뉴스를 즐겨보면서 항상 감탄했었다. 내가 워낙 많이 NBC뉴스동영상을 소개했었기 때문에 내 트윗을 자주 보는 팔로어분들께도 그가 친숙할 것이다. 뉴스앵커이자 NBC뉴스룸을 이끄는 Managing director(한국식으로 하면 보도국장쯤 된다)인 그가 이처럼 한방에 날라갈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이번에 집중포화를 맞고 하차하게 된 것은 2003년 이라크전 취재 당시 그가 실제보다 상황을 과장해서 보도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정직성과 신뢰도에 흠집이 간 것이다. 그는 당시 그가 타고 가던 군용헬기가 로켓포탄을 맞아서 위험했으나 군인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는 포탄을 맞은 헬기가 아닌 다음 헬기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보다 내용을 부풀려 멋진 무용담으로 만든 셈이다.

그는 지난주에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을 소개하는 뉴스꼭지에서 2003년 당시 상황을 다시 언급했다. 자신이 그 헬기에 타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 것이다. 그러자 당시 그 헬기를 조종했던 군인들이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겼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Screen Shot 2015-02-12 at 1.04.09 AM이것은 포탄을 맞은 헬기 조종사의 댓글이다. “미안한데 당신이 내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것을 기억못하겠다. 한시간뒤에 나타나서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오지 않았냐”고 썼다.

Screen Shot 2015-02-12 at 1.04.25 AM

이것은 브라이언 월리암스를 실제로 태우고 갔던 헬기조종사가 쓴 댓글이다. “거짓말장이!”라면서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12년전 상황이고 어찌보면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이렇게 실명을 걸고 댓글을 남기는 문화가 놀랍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성조지가 기사를 썼다. 브라이언 월리암스는 버틸 수가 없었다. 바로 방송에서 자신이 실수한 것이라고 사과했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번져갔다. 그리고 NBC방송은 그의 6개월 정직을 오늘 발표했다.

Screen Shot 2015-02-12 at 12.59.36 AM

NBC뉴스 President인 데보라 터너는 “이것은 브라이언정도 위치의 사람에게는 아주 잘못되고 부적절한 일이다”라고 발표했다.

Screen Shot 2015-02-12 at 1.01.43 AM

NBC유니버설 CEO인 스티브 버크도 “그의 행동은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이 정직처분은 혹독하며 적절한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를 내치면 시청률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는데도 NBC가 회사의 스타앵커이자 고위간부인 그에게 주저없이 이렇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미국에서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도덕률은 특히 높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브라이언 월리암스의 팬으로서 그가 이번 일을 깊이 반성하고 6개월뒤에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시 한번 SNS의 힘을 실감했다. 12년간 유야무야 넘어갔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은 페이스북 댓글 덕분이었다. 이제는 숨길 수가 없다. 특히 공인이라면 항상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기자들앞에서 늘어놓고도 시치미를 떼고 거짓을 일삼으면서도 끝까지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우리 총리후보를 보면서 공인의 도덕률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외국과 아직 참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브라이언 월리암스의 6개월 정직처분 소식을 전하는 CBS뉴스꼭지.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12일 at 1:23 오전

새로운 혁신하드웨어시장에서 존재감이 떨어지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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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5-02-08 at 11.08.24 PM

한 미국 애플스토어의 판매대. 각종 IoT제품을 전시해 팔고 있다. 드론, 웨어러블, 스마트램프 등이 보인다.

요즘 해외를 다니면서 스마트폰과 연동된 새로운 전자제품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스마트폰과 연동한 각종 블루투스 스피커, 고프로(GoPro) 같은 액션카메라, 운동량측정 웨어러블, 스마트와치 등 각종 IoT기기들, 그리고 드론이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가볍게 몇조시장은 될 것 같고 곧 수십조시장으로 급속히 성장할 것이다. 4월부터 애플와치가 나오면 이런 기기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폭증할 것이다.

드론만 해도 약 1년반전에 미국에 있을때 엉성하고 비싼 제품들을 보고 “누가 저런 것을 살까”했었다. 그런데 위 애플스토어에 전시된 프랑스 패럿사의 제품처럼 지금은 사고 싶은 매력적인 드론 제품이 많이 보인다.

상하이의 애플스토어.

상하이의 애플스토어.

이런 시장에서 블루투스스피커는 보스(Bose)나 비트(Beat)아니면 죠본(Jawbone), 웨어러블은 핏빗(Fitbit), 미스핏(Misfit), 죠본, IoT기기들은 네스트(Nest), 버킨(Belkin) 등 그리고 드론은 중국의 DJI나 프랑스 패럿(Parrot)제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다. 일부 블루투스스피커, 블루투스 헤드폰, 스마트와치 등을 생산하는 삼성, LG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다른 업체가 만든 IoT기기는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해외매체에서 소개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수많은 첨단 제품들이 소개되는 Stuff라는 잡지를 보다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삼성, LG의 TV, 헤드폰을 빼고 이 잡지에 소개된 수백개의 제품중 한국제품은 거의 전무하다.

수많은 첨단 제품들이 소개되는 Stuff라는 잡지를 보다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삼성, LG의 TV, 헤드폰을 빼고 이 잡지에 소개된 수백개의 제품중 한국제품은 거의 전무하다.

지난 1월의 CES때도 주목받는 한국제품은 거의 없었다. 삼성, LG에서 나온 제품도 주로 TV위주였을뿐 크게 화제를 끌만한 혁신적인 제품은 없었다. (물론 100%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제품들이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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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 phantom 2

 

DJI의 부스는 CES에서도 큰 인기였다.

DJI의 부스는 CES에서도 큰 인기였다.

반면 중국 심천의 세계 1위 드론 업체인 DJI같은 회사는 그야말로 대인기다. 이 회사의 드론 제품인 인스파이어나 팬텀은 요즘 매스컴 등에서 너무 자주 보인다. 이 회사는 세계 드론업계를 선도한다. 누가 중국업체가 짝퉁이나 만든다고 했던가. DJI의 제품은 디자인도 좋고 기능도 훌륭하다. 나도 하나 갖고 싶다.

CES에서 만난 Withings와 Netamo.

CES에서 만난 Withings와 Netamo.

또 프랑스는 드론으로 인기를 끄는 패럿이외에도 IoT분야에서 Withings, Netamo같은 회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CES에서 66개사의 스타트업들이 참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부분 IoT스타트업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이렇게 새로 떠오르는 분야에서 주목을 받는 회사가 정말 보이지 않는다. IoT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별로 없기도 하고 한국에는 이런 첨단 제품 시장도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곳도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한국에서 더이상 혁신은 나오지 않게 된 것일까.

창조경제를 한다고 난리인데 정작 창조적인 회사는 그다지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8일 at 11:43 오후

스마트폰, 우버에 밀리는 자동차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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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서 공유. 나는 항상 스마트폰으로 인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변화가 자동차판매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CBS모닝쇼에서 들었다. (예전에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고객을 빼앗기는 자동차업계라는 글을 쓴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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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자동차 소유대수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인당 평균차량소유대수가 2006년에 1.6대였던 것이 2011년에는 1.1대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것은 아마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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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출연한 Quartz의 Tim Fernholz기자는 몇가지 이유를 들었다. 미국의 밀레니얼세대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져 자동차를 공유하게 됐다는 것. 자동차가 더이상 신분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리고 있다는 것. 베이비부머가 예전보다 덜 운전하게 됐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1983년에는 18세의 80%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으나 2010년에는 60%로 줄었다는 것이다. Tim은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을때 운전을 하고 쇼핑몰로 가는 것이 아니고 SNS를 한다”며 “사람들은 최신형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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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경기가 살아나고 유가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자동차판매가 다시 늘어나고 있지만 자동차회사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운전을 하지 않게 된 현상을 염려하고 있고 그래서 자동차에 WiFi를 도입하고 스마트폰과 통합작업을 진행하며 ZipCar, Uber 등과 제휴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스마트폰을 들고 Uber를 이용해 있는 곳으로 즉시 차를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현상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내가 저번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우버를 이용했을때 운전기사가 한 말이 귓전에 남아있다. 그는 요즘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를 몰지 않고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이렇게 쉽게 차를 이용할 수 있는데 누가 차를 필요로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한가지는 전세계 대도시의 대중교통수단이 십여년보다 휠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어렵지 않게 잘 운영되는 지하철이나 버스시스템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도시에서도 스마트폰과 구글맵을 이용해 쉽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나만해도 한국에 돌아와서 거의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 웨어러블트래커를 차고 웬만하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한발자국이라도 더 걸으려고 노력한다. (참고 : 모바일앱과 핏빗덕분에 바뀐 내 생활습관) 꼭 필요하면 택시나 우버를 이용한다. 새로 차를 사지 않고 부모님의 차를 공유한다. 13년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딱 하나 아쉬운 것은 내 스마트폰을 카오디오와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그게 아쉬워서 차를 업그레이드하게 될지 모르겠다.

위는 미국인들의 운전감소현상을 다룬 CBS모닝쇼 꼭지다.

추가로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데이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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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미국하원의원들과 그 스탭들이 캠페인활동을 위해서 출장을 다닐때 이용한 교통영수증을 분석한 것이다. 2012년에는 약 2천8백건의 택시영수증과 함께 약 100건의 우버사용영수증이 보고되었다. 그런데 2014년에는 택시가 1천8백건으로 감소하고 우버이용이 2천8백건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Ride서비스 이용이 2년사이에 60%가량 늘었다는 점이다. 우버의 편리성에 중독된 사람들이 자신의 차량이나 렌트카를 이용하기 보다 우버를 이용하게 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이렇게 빠르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과연 10년뒤에는 어떻게 될까.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8일 at 5:40 오후

스위스콤 경영진의 한국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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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의전사회’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지나친 의전문화를 꼬집은 글을 쓴 일이 있다. 높은 사람들이 실질보다 형식을 너무 따지고 과도하게  대접받는 것에 익숙한 한국식 의전문화의 폐해에 대해서 써봤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런 과잉 의전문화가 관뿐만 아니라 일반 대기업에도 폭넓게 퍼져있다고 해서 더 놀랐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임원을 제왕처럼 모시는 문화가 한국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이런 귀빈이 행사에 나오거나 어디 출장을 간다고 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미리 동선을 짜고 예행연습을 하느라고 죽어난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 진짜 해야 할 일을 못한다. 의전에서 실수하면 진짜 중요한 업무에서 실수한 것보다 승진에서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한국의 의전 문화를 보면서 해외기업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야 원래 수평한 문화로 유명한 곳이니 이런 의전문화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의 대기업들은 한국회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스위스콤의 최고경영진을 만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그때 경험을 메모해 둔다.

***

실리콘밸리에 있는 후배의 소개로 지난해 12월에 이야기는 시작됐다. 후배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위스콤 벤처스의 헤드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이메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스위스콤의 CEO 및 최고경영진이 1월말에 한국에 방문할 예정인데 한국의 스타트업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위스콤이 어떤 기업인가. 스위스의 KT, SKT 같은 기업이다. 2013년 전체 매출은 14조7천억원규모, 영업이익은 2조7천억원쯤 되는 공룡기업이다.(스위스콤홈페이지의 재무정보 링크) 스위스의 통신시장의 60%쯤을 점유하고 있으며 유선전화, 휴대전화, 브로드밴드, IPTV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KT와 흡사하다. (KT는 2013년 연결기준 매출 23조8천억원, 영업이익은 8천7백억원. SKT는 2013 매출 16조6천억원 영업이익 2조원) 스위스콤은 공개기업은 아니지만 구글파이낸스에서 검색해보니 현재 대략 37조원정도의 기업가치를 가진 회사다. 이 정도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오는데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들을 만나보겠다니 사실 좀 놀랐다. 어쨌든 후보 스타트업 명단을 만들어 보냈고 1월말의 금요일 오후에 우리 사무실에 방문해 스타트업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1월말 스위스콤미팅에 앞서서 스위스대사관만찬에 초대받았다. 연륜이 풍부한 스위스대사와 함께 한국을 막 방문한 스위스콤 경영진 일행을 만났다. CEO와 CTO, 마케팅, 전략 담당 임원 등 4명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이 단 4명만 왔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번 미팅을 조율한) 스위스콤벤처스에서 누군가 올 줄 알았다. 아니면 비서실 소속 부장이나 과장정도 실무진이 CEO와 임원들을 직접 수행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최고경영진 단 4명만 왔다고 해서 좀 뜻밖이었다.

스위스콤 일행중 회사 홈페이지 경영진명단 제일 위에 나와있는 CEO와 CTO.

스위스콤 일행중 회사 홈페이지 경영진명단 제일 위에 나와있는 CEO와 CTO.

스위스콤 CEO는 이번 첫 한국방문을 1.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한국의 막강 브로드밴드 환경에 대해서 배우고 2. 또 모바일인터넷서비스는 어떤 것이 나와있는지 살펴보고, 그리고 3. 한국의 스타트업들을 만나보고 싶어서라고 목적을 이야기했다. 급변하는 통신업계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에서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섣불리 스타트업을 인수했다가 그 혁신을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참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고민이 많다는 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이렇게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KT, 네이버, 다음카카오, SK플래닛, 삼성전자 등을 방문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사관만찬을 갖고 사흘뒤 스위스콤 일행은 귀국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스타트업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스타트업과 미팅을 갖기에 앞서서 국내VC들과의 점심식사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헬리콥터 착륙지연으로 스위스콤 일행이 식사시간에 한시간 지각을 했다. 구미의 삼성공장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 임원 4명이 움직였을뿐 따로 수행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위스대사관에서 상무관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는 따로 연락을 받고 식사장소에 먼저 와 있었고 스위스콤 일행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처음 알려온 것도 누굴 통해서가 아니라 김포공항에서 CTO가 직접 나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왔다.

스위스콤 경영진과 한국VC오찬.

스위스콤 경영진과 한국VC오찬.

일정이 지체되고 있어 식사를 빨리 주문해놔야 할 것 같아서 메뉴 사진을 찍어서 CTO에게 문자(iMessage)로 보냈다. 식사장소는 양식당이었다. 그랬더니 “햄버거 4개를 주문해 달라”고 즉각 답이 왔다. 이 CTO는 스위스콤 경영진 홈페이지에서 CEO 다음으로 서열 2번째에 있는 사람이다.

대절한 차를 타고 일행이 레스토랑에 지각 도착했다. 식사하는 중에 임원이 한명 안와서 어디갔냐고 물어봤더니 스타트업미팅을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므로 짐을 우리 사무실로 올려두러 우리 직원과 같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짐을 가져다 놓고 10분뒤에 왔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늦게 왔다고 정말 미안해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 있는 큰 회의실에서 스타트업 6개사와 미팅을 시작했다. 2시15분부터 6개팀을 각 20분씩 만나고 아무리 늦어도 4시반에는 대기하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했다. 6팀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만날 기회를 줘야 하므로 거의 쉴 시간도 안주고 6팀의 발표세션을 밀어붙였다.

Screen Shot 2015-02-01 at 1.52.22 PM

공기도 잘 안통하는 좁은 회의실에 모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했는데 이들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시간을 빼놓고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열심히 스타트업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떠났다. 미리 대절해둔 차가 와서 4명이 그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금요일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 스위스콤 CTO는 내게 토요일 오후 2시에 메일을 보내서 (미리 약속했던대로) 그룹내 스타트업 담당임원을 소개해줬다.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메일을 쓴 것 같다.

솔직히 이들의 출장일정을 보면서 말도 잘 안통하는 나라에 처음 갔는데 수행비서를 데리고 와서 같이 다니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거대기업의 최고임원진이 거들먹거리지 않고 이렇게 소탈하게 출장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또 스위스인들이 참 실용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쨌든 이 분들이 모처럼 한국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방문했는데 준비부족으로 너무 누추한 곳에 정신없이 모신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계속 남아있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을 인연으로 스위스콤이 한국스타트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1일 at 2:07 오후

중국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과 샤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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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우는 심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은 화창베이 전자상가. 용산전자상가의 10배~20배쯤 되는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운상가 같은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현대적인 큰 빌딩들이 즐비하고 그 안에 가득히 각종 전자제품가게들이 채워져있다.

Screen Shot 2015-01-31 at 9.42.32 PM

여기서 조금만 걸어다녀보면 애플과 샤오미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creen Shot 2015-01-31 at 9.09.0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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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5-01-31 at 9.10.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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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은 워낙 애플과 샤오미가게가 붙어있는 것이 많이 보여서 몇군데 찍어본 것이다.

샤오미는 99%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심천에는 이렇게 샤오미대리점(?)이 많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곳 전자상가업자들이 손에 넣은 제품들을 (샤오미 허락도 없이) 샤오미 간판을 달고 판매하는 것이다. 애플공식스토어가 심천에 있기도 하지만 이런 비공식(?) 애플스토어가 휠씬 많다. (애플 브랜드가 저렇게 마구 사용되는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무덤속에서 막 화를 낼 것 같다.)

애플이나 샤오미 짝퉁을 파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시중인 제품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심천은 짝퉁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전자상가의 어딘가에서는 그런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겠지만 저렇게 겉으로는 그런 제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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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은 아니지만 화창베이근처에서 본 가장 노골적인 짝퉁제품은 이 뉴 바룬(?)운동화였다. 뉴밸런스와 똑같다. ㅎㅎ

통신사의 대리점은 거의 없고 (아마도) 모두 언락폰을 파는 것도 특이했다. 고객은 원하는 폰을 사가서 마음대로 쓰던 USIM을 바꿔끼워서 쓰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거센 스마트폰 판매경쟁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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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저렇게 샤오미를 가두판매하는 곳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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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수리센터에 붙어있는 로고를 보면 어느 회사 제품이 가장 인기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애플, 삼성, 샤오미, 화웨이 로고가 붙어있다.

물론 삼성로고를 붙인 가게들도 많이 있었지만 잘보이는 곳에서는 거의 애플과 샤오미가 한판 붙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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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대 메이커에 대한 중국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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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거대기업답게 아주 깔끔한 자체매장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폰자체가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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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주자중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은 Oppo였다. 아이폰6보다 얇다는 R5가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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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ZU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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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O라는 브랜드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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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패드도 꽤 큰 심천회사라도 들었는데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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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보도 스마트폰이 있고 ZTE라는 큰 회사에서 스마트폰도 있다. 그밖에 잘 모르는 브랜드도 많았다. 폭스콘에서 만난 분은 “화창베이에는 거의 100개의 중국 스마트폰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중 다크호스가 오포, 메이주 같은 업체들이다”라고 말했다. 제2의 샤오미가 되기 위해서 난리다. 만져보면 다 디자인도 괜찮고 쓸만해 보인다.

이상하게도 LG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G3가 괜찮은 폰인데도 말이다. 똑같이 노키아 등 윈도우폰도 안보이고 소니에릭슨 같은 브랜드도 전혀 없다. 애플, 삼성 대 중국연합군의 대결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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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가 심천 화창베이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거리 한편에 MS 스토어를 공사중인 모습이 보였다. (설마 진짜 MS스토어겠지?)

샤오미는 정말 잘나가고 관심의 촛점인 것 같다. 서점마다 샤오미의 마케팅 성공전략을 쓴 ‘참여감’이란 책이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다. 내가 손에 들고 뒤적이자 점원이 웃으면서 와서는 “샤오미를 좋아하냐?”하고 막 뭐라고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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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남방항공 기내지에도 샤오미의 레이준이 크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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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상해, 심천을 다니며 스마트폰을 쓰는 중국인들을 유심히 봤다. 지난 4분기에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 판매 1위를 탈환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판매대수로 애플, 샤오미, 삼성, 화웨이순이었다.)

정말 중국인들이 아이폰 많이 쓴다. 다른 중국산스마트폰보다 월등히 비싼데도 그렇다. 샤오미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애플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샤오미의 가능성도 대단한 것 같다. 전자상가 상인들이 저렇게 자진해서 샤오미 브랜드 간판을 달고 대리점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일반 소비자들이 샤오미를 원하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중국에서 스마트폰 브랜드가치로는 삼성에 필적하게 올라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은 샌드위치신세다. 위로는 애플에 막혀있고 아래에서는 샤오미 등이 막 치고 올라온다. 중국에서의 이 전세가 글로벌하게 퍼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의 분발을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미 이 정도 제품을 자력으로 내놓고 있는 중국 스마트폰 업계가 과연 팬택같은 회사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허포트폴리오정도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다.) 아쉽게 주저앉아버린 팬택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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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샤오미를 좀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어서 샤오미대리점(?)에서 MI4모델을 하나 사왔다. 가격은 1999위안. 한화로는 대략 35만원정도 한다. 샤오미생태계가 어떤 것인지 좀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1월 31일 at 10:28 오후

미국에서는 토론을 잘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릭 페리의 웁스 모우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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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시작한 바로 다음달인 2009년 2월에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5년간 살다가 귀국했다. 그 기간동안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2011년말 대선에서 또 승리해 재임하는 것을 지켜봤다. 특히 2011년 1년동안 진행된 미국의 대선레이스를 지켜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대선은 뭐랄까 거대한 미디어 정치쇼다. 수많은 공화당후보들이 나와서 경선레이스를 거쳐서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과정자체가 하나의 박진감넘치는 TV쇼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밋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대선후보들이 초반에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무대가 후보합동토론회였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대통령이 되려면 끝도 없이 토론회를 거쳐야 한다.

나는 2011년 대선레이스중에 가장 유력한 공화당 후보중 하나였던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가 토론에서 실수를 해서 허망하게 탈락해 버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없애겠다고 한 정부부처 3곳중 한 곳의 이름을 토론회에서 기억해내지 못해 망신을 당하고 사퇴해 버렸다. (조선일보 관련 기사 링크)

위 동영상을 보면 릭 페리는 자기 차례에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없앨 부처가 3군데 있다”며 상무부, 교육부까지 이야기하고 세번째 부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옆에 서있는 론 폴 등 다른 후보들은 “5군데 아니냐” 등 농담을 던지며 놀렸고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는 “EPA(환경보호부처)냐? 아니냐? 기억을 못하는 것이냐?”라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약 1분가까이 진땀을 빼던 릭 페리는 “미안하다. 기억을 못하겠다. 웁스”라고 사과했다.

그때까지 텍사스주지사로서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보수파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릭 페리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다음날 미국뉴스와 신문은 “Oops moment”라며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나는 당시 사람이 긴장하다 보면 부처이름 하나 기억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진행자가 그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TV뉴스에서는 “미국 대통령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도 나라를 이끌어야하는데 저런 능력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저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담력도 아주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SNL 등 각종 코미디프로그램에서 릭 페리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됐다. 릭 페리는 텍사스 주지사직을 잘 수행하고 지난 1월에 퇴임했는데 당시에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을 것이다.

3번째 부처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릭 페리를 풍자한 이 SNL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당시에 포복절도했다. (영어의 압박이 있겠지만) 한번 꼭 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오늘 아침 2008년 대선에서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로 나왔다가 인터뷰와 토론에서의 엉뚱한 답변으로 인해 망신을 당하고 매케인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라 페일린이 또 대선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읽고 릭 페리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가볍게 적어봤다.

당시 어떤 뉴스에서 한 80세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토론을 잘 못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본 것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우리도 다음부터는 꼭 토론 잘하는 대통령을 뽑았으면 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1월 25일 at 5: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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