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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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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의 한 도서관. 미국도서관들은 오디오북을 적극적으로 빌려준다.(사진출처:Flickr)

위스콘신의 한 도서관. 미국도서관들은 오디오북을 적극적으로 빌려준다.(사진출처:Flickr)

글을 읽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눈도 힘들고 지친 머리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탓이다.

그럴 때 오디오북이 유용하다. 눈으로 읽는 것이 부담이 될 때 의외로 성우가 경쾌하게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책의 내용을 부담없이 귀로 흡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나는 오디오북을 즐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과 오디오북을 같이 사서 듣기도 한다. 책이 읽히지 않을때는 오디오북으로 듣고 들은 부분만큼 건너뛰고 책으로 읽는 식이다. 예전에 엄청나게 두꺼운 스티브 잡스 전기를 그런 방식으로 읽었다. (참고: 디지털시대의 책 읽기 : 스티브 잡스 전기의 경우) 돈이 좀 들긴 하지만 할인해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도 있고 그렇게라도 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초 미국에 처음와서 오디오북을 접했는데 그때는 대부분 카세트테이프로 나와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의 내용을 축약한 Abridged버전이 주류였다. 당시엔 영어가 잘 안들렸기 때문에 그냥 영어공부 삼아 들었다. 그러다가 CD버전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질도 좋아지고 편리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긴 책의 경우는 CD가 10장이 넘기 때문에 번거로왔다. 가격도 비쌌다.

내가 알기로 90년대까지는 주로 베스트셀러만 오디오북으로 나왔다. 그것도 오디오북팬들을 대상으로 Booksontape같은 회사가 회원제로 오디오북을 제작해 보급하곤 했다. 그런데 오디오북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사실 스티브 잡스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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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Audible.com이란 회사가 있다. 99년 설립된 이 회사는 오디오북을 다운로드받아 디지털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초창기 이 회사는 오디오북 디지털파일을 휴대해서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적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이 회사는 아이팟의 대중적인 보급과 함께 기사회생했다. 아이팟이 초기부터 Audible파일포맷을 지원해주었고 아이튠스에서 오디오북을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3년 내가 애지중지하던 아이리버MP3플레이어를 포기하고 아이팟으로 갈아탄 이유도 Audible 오디오북을 아이팟에서 재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난 Audible은 꾸준히 성장해 2008년에 3억불에 아마존에 인수됐고 지금까지 성업중이다. (난 12년째 유료회원이다.) Audible에는 10만권이 넘는 오디오북타이틀이 있다고 한다.

Audible의 아이폰앱화면. 앱에서 구매한 오디오북을 다운받아서 바로 들을 수 있다. 많이 들으면 마치 게임처럼 배지를 준다.

Audible의 아이폰앱화면. 앱에서 구매한 오디오북을 다운받아서 바로 들을 수 있다. 많이 들으면 마치 게임처럼 배지를 준다.

어쨌든 아이폰을 위시로 한 스마트폰의 대중화 덕분에 미국의 오디오북시장은 완전히 자리잡았다. 미국의 오디오북시장규모는 약 1조원가량된다고 한다. 이제는 상상할 수 없이 긴 책도 축약없는 Unabridged버전으로 나온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해리 트루먼 전기는 총 54시간분량이다. 요즘 웬만한 책은 모두 오디오북버전이 (전자책버전과 함께) 같이 발매된다.  이제는 스마트폰에서 오디오북을 다운로드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디오북이 더욱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다.

긴 운전을 많이 하는 미국인들에게 오디오북은 좋은 길동무가 된다. 내가 아는 미국 분은 LA남부의 오렌지카운티에서 LA인근 글렌데일까지 교통상황에 따라 편도 1시간에서 2시간이 걸리는 길을 수십년간 출퇴근했다. 그 분이 그 긴 통근길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디오북 덕분이었다. 차 트렁크에 오디오북CD를 가득 넣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원하는 책을 들으셨다.

또 한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 건너 마린카운티로 출퇴근하는 분과 식사를 한 일이 있는데 그 분도 항상 오디오북을 듣는다고 했다. 그 분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남아있다. “집에 도착해도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 적이 많아요. 오디오북 스토리에 푹 빠져서 중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오디오북을 오래 즐겨왔지만 지금도 영어로 듣는 책 내용이 100%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두리뭉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하고 넘어갈 때도 많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하면 스토리를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흥미로운 책을 접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래도 덕분에 영어가 많이 늘기도 했다.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오디오북을 듣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요즘은 머리가 많이 지쳤는지 한글로 된 책을 제대로 읽기도 힘들다. 진도가 잘 안나간다. 읽고 싶은 화제의 신간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럴 때 성우가 멋진 목소리로 책 내용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이 글을 써봤다.

(요즘은 책의 저자나 유명배우들이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많다. 위는 앤 해서웨이가 읽은 오즈의 마법사)

Written by estima7

2013년 3월 6일 , 시간: 10:41 pm

18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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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구매만 해놓고 제대로 듣질 못했는데요…^^;
    저희 팀의 미국인 아줌마는 1시간 가량의 출퇴근 시간이라 오디오북을 많이 듣는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장거리 운전이 오디오북 판매에 조금은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Elca Ryu (@elcaryu)

    2013년 3월 6일 at 11:29 pm

    • 제가 가만히 보니… 장거리운전이 오디오북 판매에 조금 일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운동할때 듣던가.)

      estima7

      2013년 3월 7일 at 8:21 am

  2. 전 습관이 안되서 아직 오디오북이 낯선데, 어려서부터 차에서 오디오북을 계속 들어왔던 우리 아이들은 참 좋아합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좀 마저 듣게 차 시동을 완전히 끄지 말고 기달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요.

    윤필구 (@philkooyoon)

    2013년 3월 7일 at 1:38 am

    • 윤이사도 출퇴근하는데 길이 막혀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그럴때 오디오북이 참 유용할텐데…

      estima7

      2013년 3월 7일 at 8:22 am

  3. 저는 Freaknomics 오디오북 들었는데 저자중 한명이 직접 읽어주니까 좋더라구요. 저도 머리 아플때 머리 식힐겸 들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네요.

    Ellery

    2013년 3월 7일 at 3:09 pm

    •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네요. 반갑습니다^^

      estima7

      2013년 3월 7일 at 4:02 pm

  4. 전 TTS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앱으로 전자책을 보는데
    듣는데 ㅋ
    생각보다 책을 많이 보게됩니다 특히 소설책은 더
    좋은것 같습니다.

    kimjunho79

    2013년 3월 7일 at 4:45 pm

    • 전 TTS는 기계음이라고 생각이 되서 꺼려지던데요. ㅎㅎ 그래도 모든 책을 오디오북으로 살수는 없으니 가끔씩 보완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겠군요. 어느 앱을 쓰시는지 혹시 이글 보시면 알려주세요.

      estima7

      2013년 3월 8일 at 9:43 am

  5. 에스티마님의 블로그 덕분에 오더블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책 읽기”를 통해 참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었지요. 지금은 저도 유료회원으로 가입하고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특히 킨들 이북과 병행해서 들으면 참 좋더군요. 아직 리스닝이 수월하지 않아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책을 영어로 듣고 있습니다. 저도 매주 장거리 운전을 하는지라 활용도가 높은 것 같네요. 이번 글도 감사합니다. ^^

    김태훈

    2013년 3월 8일 at 6:30 am

    • 매번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를때마다 가볍게 써보는 편인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쁩니다. ^^

      estima7

      2013년 3월 8일 at 10:06 am

  6. 올 때마다 ‘자, 이렇게 좋은 영어 컨텐츠가 있어요. 그리고 이런것은 더 좋네요, 내가 써보니까 참 좋아요’ 라며 어느 학원 강사보다도 강력하게 영어공부 뽐뿌를 주시는 에스티마님… 크흑. ㅜㅜ 감사합니다.

    Jee Hoon Lee

    2013년 3월 8일 at 2:21 pm

    • 자꾸 본의아니게 그렇게 되는 것 같네요. ^^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면 제가 사익을 취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estima7

      2013년 3월 8일 at 2:33 pm

  7. […] 좋아하는 오디오북 이야기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는 오디오북출간이 활발하지 못했다. 대형 […]

  8. ^^. 전 주로 폰에서 T-Store Book 앱의 음성지원을 사용합니다~ 말끔하진 않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Hwang Jae_won (@ka8590)

    2013년 7월 9일 at 7:26 pm

  9. […]  “오디오북 단상”,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 임정욱 […]

  10. 오디오북 제작에 참여하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한국 오디오북 회사가 어디어디 있는지 혹시 아시면 알려주심 정말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성현주

    2014년 5월 4일 at 2:11 pm

    • 제가 현재 알고 있는건 이고, 오디언 이외에도 5~6개의 회사가 현재 한국에 있다고 하는데 검색을 해보아도 오디언이 압도적이어서 혹시 이외에 오디오북 회사를 알고 계시면 알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고 하세요 !!

      성현주

      2014년 5월 4일 at 2:13 pm

      • 죄송합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아마 오디오북회사라기보다는 오디오북 형식으로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 읽어주는 서비스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bookcast.tistory.com/

        estima7

        2014년 5월 5일 at 9:0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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